2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뇌리에 박혀 있는 사건·사고가 있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날 오후 취재 지시를 받고 날아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고현장은 신출내기 기자를 압도했다. '이럴 수가 …'. 뒤통수를 치듯 그냥 사람을 멍하게 만들었다. 희뿌연 먼지 연기, 매캐한 냄새, 어둡고 서늘한 기운은 지금도 한번씩 떠오른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의 붕괴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컴퓨터그래픽 같은 CNN방송 화면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테러 사건 이듬해 한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쌍둥이 빌딩이 비스켓처럼 부서져 내린 자리(그라운드 제로)는 예상보다 광활하고 처참했다. 붕괴사고 순간 십자가 형상으로 부서진 철재 빔, 사고 희생자들의 유품, 유가족들의 애끓는 사연 등이 사고 현장과 주변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2008년 2월 10일 설 연휴 마지막 날 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은 TV 속에서 불타 무너졌다. 수십 대의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에워싸고 있었기에 연기를 피우고 있던 불길은 곧 진압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600년을 지켜온 '역사'는 불과 5시간 만에 국민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스러져갔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숭례문을 볼 줄 아는 안목도 없었고 그 가치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난해 '국보 1호 논쟁'이 한창일 때도 내심 국보 1호로 훈민정음이나 석굴암 본존불상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지 숭례문을 편들지 않았다. 숭례문의 위대함은 불 붙은 숭례문에서 기왓장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죄의식이 뒤섞인 탄식과 함께.
숭례문 방화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다.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책임 공방이 오가고, 경찰은 무인 경비업체에 이어 관할 서울 중구청을 압수수색하는 등 사건 수사에 고삐를 죄고 있다. 허술한 문화재 관리 전반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아울러 반성의 목소리도 높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당연히 챙겨야 할 일이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밟아야 할 수순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숭례문 방화사건 같은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치주의의 복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인 불만으로 국보까지 불지르는 범행도 서슴지 않은 방화범의 사회적 일탈을 겨냥한 것이다. 또 인문학적 풍토가 고갈되면서 대부분 대학의 역사학과가 존폐 위기에 몰릴 만큼 척박해진 현대 한국사회의 정신문화가 숭례문을 소실시킨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화재의 근본 원인은 '우리 '것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제대로 교육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신영훈 한옥문화원장의 진단은 매섭다.
불 탄 숭례문을 찾는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 전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다녀갔으며, 숭례문 주변은 수천 명의 시민과 외국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는 소식이다. 참사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행렬이다. 숭례문 추모 현상은 심리적인 충격을 완화시키는 국민적 치유이고, 국보를 지키지 못한 수치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역 마케팅'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불 탄 숭례문의 잔재를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불 탄 숭례문까지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자는 이야기에선 더 이상 추락 여지가 없는 곳에서 또 낙하할 지점을 찾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몰가치한 실용주의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숭례문 참배의 눈길이고, 이를 가슴에 새기는 국민적 감수성이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또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존재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충격은 망각할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을 것이다. 아픔과 고통 없이 성숙하는 사람은 없다. 역사의 진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쓴 글귀가 가볍지 않다 '숭례문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반성과 교훈으로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가 너무 큰 것이 억울하지만 숭례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붉은 눈시울에서 우리사회의 이 경박한 삶의 양식도 언젠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