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의 출범으로 이전까지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호 5년 항해의 1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보이는 모습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입장에 선 것이다. 당연히 책무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도록 일만 하고 싶다'는 평소 다짐에 비춰 'MB 논픽션-1825일'이 어떻게 그려질지 예상이 된다.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그는 경제발전 등 5대 항목을 국정지표의 틀에 담았다. 이를 이념을 넘어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취임사 전문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약속의 첫머리에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한 점이다. 핵심 국정 방향에 '국민을 섬긴다'를 포함한 것은 전례에 비춰 매우 이채롭다.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노무현)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김대중) '우리 다 함께 신한국으로'(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 취임사에선 아예 없거나 꾸밈말 정도로 사용됐다. 굳이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말 자체가 추상적인 데다 섬기는 정도의 지표는 주관적이기 쉽고 계량이 어려워 새삼 눈여겨보게 된다.
취임사 속 숱한 국정 과제들을 차질없이 수행해 '시화연풍(時和年豊·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하는 게 국민을 잘 섬기는 것으로 농축해 받아들이면 되겠다. 덧붙이면 권력의 교만을 경계하는 자정 장치이기도 하다. '섬김'의 출발은 자기 낮춤이고 권위의 힘을 빼는 것이다. 대통령이기 전에 이명박 장로는 신앙을 통해 교만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교만은 자기권위를 낳고 패망의 선봉이다. 초심을 잃고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도 교만 때문이다. 새 정부가 실용과 함께 국민 섬김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바로 그런 점을 주의한 때문으로 이해한다.
섬기는 정부에 밑줄을 치고 보니 초장부터 기분이 별로다. MB 정부의 과제와 다짐을 백화점식으로 총 망라한 방대한 분량의 취임사에서 '지방'이라는 단어가 단 한 개도 없는 게 우선 심히 유감스럽다. 굳이 찾자면 '광역화' 한 단어다. 지방이 그렇게 존치를 요구한 해양부를 없애고, 강남 편드는 부동산세금 완화 추진, 지방대 출신이 전무한 각료진 등을 보면서 그러잖아도 '지방 홀대' 인상을 받은 터였다. 지방화와 분권, 균형발전은 여전히 진행형 과제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의 병폐는 심각하다. 국토 구조 개편에 무게를 둔 광역화 한 단어에 지방 살리기 의미를 담았다면 난센스다. 지방에 방점이 찍히는 균형발전은 강한 의지와 실천 과제가 특히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애써 외면했다. 인수위 때부터 표출된 여러 흐름으로 봐 새 정부 저변에 깔린 '친중앙, 비지방'적 기조가 극히 우려스럽다. 두고 봐야겠지만 출발은 지방, 지방민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자랑했던 초대 내각 구성도 가관이다. 부동산 투기, 자녀 이중국적 및 병역기피, 논문 표절 등으로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문제 장관 내정자들의 문제의식 없는 황당한 해명이 설화를 일으키고 각종 블랙 유머를 낳았다. 아마추어적 인사 검증 시스템도 그렇지만 더한 심각성은 드러내놓고 당당한 그들의 '부자 특권 의식'이다. 자녀 위장전입·위장취업 등 의혹을 경제살리기 하나로 돌파한 대통령이 그러했듯 밀고 나가면 된다는 오기의 발동인가.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의혹이 짙은데도 "돈은 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과 자질이다"는 논리로 초기 대응한 여권 주변의 시각도 위험수위다. 국민이 요구하는 잣대는 그렇게 냉혹하지 않은데도 그런 눈높이마저 무시하는 오만함이 묻어난다. 백성을 섬기려는 기본 태도가 결여됐다. 인사청문회가 열리자 청와대가 뒤늦게 남주홍 통일, 박은경 환경장관 내정자를 자진 사퇴 형식으로 경질했다. 취임도 하기 전에 낙마자가 3명으로 늘었고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섬기는 대통령으로서 주변을 다시 한번 매섭게 둘러보고 출발해도 늦지 않다.
편집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