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6일. 참으로 희한한 선거판이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일을 불과 6일 남겨두고 있는 현재의 부산 선거 구도가 한나라당 대 짝퉁 한나라당의 대결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후보들로서야 자신들의 정치운명이 갈리는 중차대한 일이겠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한나라당 반장 선거' 같은 기분이 들만도 하다.
공천에 탈락해 한나라당을 뛰쳐 나온 친박(친 박근혜) 무소속연대 후보들이 '박근혜 마케팅'을 통해 심상찮은 바람을 일으키며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 친박연대 후보와 순수 무소속 후보마저 가세하면서 한나라당이 텃밭으로 여겨온 부산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4년 전과는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 데다 대통령선거가 있은 지 넉 달도 채 안 된 시점이라 무난하게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던 부산 한나라당으로서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셈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지라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물갈이 인적 쇄신이 예전처럼 '선거용 보약'이 안 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선거구 주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엉터리 공천, 계파 공천, 연줄 공천을 한 후유증이 예상외로 커 보인다. 특히 공천 탈락한 친이(친 이명박) 후보들이 출마의 뜻을 접은 것과는 달리 상당수 친박계 후보들은 '핍박'을 받았다는 이미지를 내세워 대거 출마해 표심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마케팅'은 정상적이지 않으며, 정당정치의 후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당초 정책대결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저도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살아서 돌아와 달라' '살아서 박근혜 대표님에게 돌아가겠습니다'는 식의 선거 홍보전은 원칙과는 거리가 한참 멀며,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다. 대선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원칙과 깔끔한 승복으로 스타가 된 박근혜 전 대표를 선거에 이용하겠다는 전략이겠지만 박근혜는 엄연히 한나라당 후보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더 먹혀들어간다는 게 선거라지만 이는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뒤늦게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의 이름과 모습, 영혼을 팔고 있는 후보들이 많다"(강재섭 대표)며 견제에 나섰지만 이에 침묵하는 박근혜나,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한나라당 지도부 모두 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이념을 공유한 정당 본연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총선 후 친박 세력들이 어떤 식으로 다시 뭉치더라도 사당화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탓에 부산 선거판의 한나라당 '싹쓸이' 가능성은 희박해져 18대 0이라는 부끄러운 자화상은 일단 모면한 듯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이탈한 표가 야당으로 옮겨가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그 내용이 변한 것은 아니다. 당장은 한나라당이 '복당불가론'을 내세워 친박 무소속 바람을 견제하고 있지만 선거가 끝나면 어떤 형태로든 한나라당과 합쳐질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이런 데는 야당에도 책임이 있다. 야당은 부산지역에 후보조차 제대로 출전시키지 못하는가 하면 통합민주당은 부산 등 영남권 선거를 아예 포기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결국 이번 18대 총선도 '3김 시대' 이후의 신지역주의의 부활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구·경북(TK) 대주주론'이니 '충청권 주인론'이니 하며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도대체 이 망국적 지역구도는 언제쯤 깰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구를 탓하기 전에 대양을 향해 탁 트인, 개방적 해양도시인 부산시민이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에 당당히 설 수는 없는 노릇일까. 당장 여야의 황금비(황금분할)는 불가능하더라도 여야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갈 수는 있지 않겠는가.
부산시민이 제대로 섬김받기 위해서라도 한나라당 간판의 출마가 곧 당선이라는 식의 '작대기 선거' '몰표 선거'는 이젠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량(選良)들이 선거 때만 되면 외치는 '머슴'에서 벗어나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법을 체득할 수 있을 터이다. 6일 앞으로 다가온 투표일(9일)에 꼼꼼히 따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