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을 오가는 수출입 화물선에 가득 실린 컨테이너. 이 컨테이너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얽혀 있을까. 먼저 화주와 선사, 부두 운영사를 들 수 있다. 이어 컨테이너 운송차량, 야적장, 라싱, 겐트리크레인(G/C)과 컨테이너크레인(C/C), 야드트렉터, 신호수, 줄잡이, 도선사, 물과 유류 등 선(船)용품 공급업자, RFID(무선인식기술) 등 일일이 따지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컨테이너 하나가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는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으로 흔히 항만을 꼽는다. 항만의 사회적 공공재 기능과 역할을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이 맡아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항만에 대한 투자나 운영은 공적 개념이다. 이러한 항만의 공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민간이 항만에 투자하거나 운영하기도 한다. 효율성 측면을 추구한 당연한 결과다. 민간기업이나 해운선사에서 부두 운영사를 맡은 지도 이제 10년이 넘는다.
그러나 '실용' '효율'로 무장한 '민영화'의 잣대를 항만공사(PA)에 들이댄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기업·공공기관 구조개혁의 물살에 휩쓸리고 있는 부산과 울산, 인천 등 3개 항만공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통폐합 후 한국항만공사 부산지부'설이 불거지더니 '경영권만 민영화'설도 등장했다. 지방항만공사의 특수성을 감안,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이런 와중에 공기업·공공기관 개혁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달에서 다시 다음달로 늦춰지면서 '괴담'은 더 증폭될 전망이다. 지금은 차라리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가 정답인 셈이다.
공기업에서 상업성을 분리해 이를 민간에 판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방침인데, 이는 비판과 개혁의 표적이 공기업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정말 민영화만이 해답인가.
이왕 공기업 개혁이란 화두가 나온 김에 싱가포르 PSA처럼 정부에서 100% 출자했지만 간섭을 하지 않는 주식회사 형태의 공기업으로 부산 등 3개 지방항만공사의 위상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3개 지방항만공사가 사실상 해외사업 등 주요 정책의 의사결정권, 임원 인사권도 갖지 못하는 '무늬만 공기업'인 탓이다. 명칭만 지역명을 붙여 놓았을 뿐 그 실체는 중앙정부 관리감독 아래 운영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항만 개발·관리운영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럴 경우 지자체들이 앞다퉈 항만 과잉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항만기본계획을 짜고 이 틀 안에서 지자체가 항만의 관리·운영을 맡는다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오히려 '실용'적이거나 '효율'적이지도 않은 '투 포트' 정책으로 항만 과잉 개발에 앞장 섰던 중앙정부가 항만 관리·운영권의 지자체 이양에 난색을 표할 처지도 아니지 않는가.
장하준 교수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는 "민영화를 할 때는 신중을 기해서 '적절한 기업'을, '적절한 구매자'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팔고, 이후로도 그 기업을 '적절하게 규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민영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사실 공기업 민영화가 성공만 불러온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선진국 사례'를 보자. 영국의 민영화 항만들은 국유화 당시에 비해 많은 돈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현재 영국 내 '글로벌' 항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독일 함부르크, 벨기에 앤트워프 등 다른 유럽 항만이라면 몰라도.
사유화로 바뀐 러시아 항만도 인프라 투자는 제쳐놓은 채 하역료를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됐다. 러시아 항만에서 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당 받는 하역료는 부산항보다 4~5배나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렇다고 러시아 항만의 인건비가 비싼 것도 아니다.
우리의 지방항만공사가 이러한 나쁜 선례를 답습하지 말란 법도 없다. 민간기업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항만 개발과 관리, 재개발사업, 항로 증심·준설 등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항만 배후물류단지의 임대료도 거의 헐값 수준인데, 더 '돈'이 되는 분양을 택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항만의 공공재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항만 민영화는 길이 아닌 것 같다.
해양수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