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 장마철이다. 여기에다 불확실한 정국이 가슴을 짓누르니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민들 앞에 또 머리를 숙였다. 미국산 쇠고기협상 파동 등 국정 난맥상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다. 그리고 인적 쇄신을 통해 국정을 일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표현 하나에도 신경을 쓴 듯 한껏 자세를 낮췄지만 진정성은 별로 묻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며 특별기자회견을 하는 시간에도 보수세력은 곳곳에서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태도에서 무슨 사과냐, 한번 붙어 보자는 기류까지 감지된다. 먼저 지면을 통해 격앙된 보수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일부 보수 언론은 촛불집회를 부정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편파 보도로 여론의 질타를 받다가 국민적 저항이 주춤하는 새, 촛불집회를 폄훼하고 정부의 강경대응을 부채질한다. 촛불집회를 좌파 운동권의 난동으로까지 매도하며 '시위대 눈치를 보는 무기력한 공권력'을 충동질하고 있다.
얼마 전 "촛불시위는 위대하나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시국을 진단했던 이문열 씨도 그 새를 참지 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불장난 오래 하면 다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촛불시위는 국헌문란 행위이며 내란에 준하는 난동이니 의병이 일어나 진압해야 한다"고 작정한 듯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을 촉발시킨 네티즌을 겨냥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발언 또한 가관이다. 주 의원은 인터넷에서 익명성 허위 정보를 양산 유포하고 퍼나르며 사회를 왜곡시키는 사람들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검역주권을 요구하는 국민을 천민민주주의 신봉자 집단으로 매도했다.
이런 풍경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회견에서 묻어나오는 진정성을 의심 받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물론 문제의 본질은 이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있다. 이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지난번 대국민 담화 이후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잇따라 하며 불신을 자초해 왔다. 며칠 전에는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 인터넷은 독"이라고 언급하면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난국의 원인을 인터넷에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보수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움직임이 곳곳에 나타났다. 친박세력의 무조건 복당을 첫 조치로 내놨던 시국 해법은 급기야 심대평 총리 기용설을 흘리는 데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 대연합을 운위할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촛불집회는 특정 세력의 정치공세가 아니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을 좌파세력으로 몰아 각을 세우는 것은 대국민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이다.
집권 세력은 왜 국민에게 불신을 샀는지, 어쩌다가 임기 초반에 정권 퇴진론의 불명예까지 안아야 했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우선 새 정권 들어 해놓은 것이 무엇인가를 돌이켜보라. 지난 10년 동안 세상 변한 줄 모르고 무리한 관치경제 펼치다 서민들의 경제 살리기 기대를 쪽박 깨듯 깨 버렸다. 온갖 우려 속에서도 강행한 고환율 정책이 국민들을 생활고로 밀어넣은 것이다. 겨우 한다는 짓이 골프장 그린피 낮추는 일이니 1%를 위한 정부가 아니고 무엇이냐란 비난을 살 만하다. 불신은 그로부터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 극우보수 집단은 현 사태를 인터넷의 악용, 촛불 시민들의 불순한 음모로 몰고 가려고 한다. 촛불시위를 좌파의 공세로 몰아붙이려는 것은 국론이야 분열되든 말든 정국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속셈으로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촛불을 들었던 국민은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유모차를 끌고나온 주부,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왜 일상 속에서 뛰쳐나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부터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책임 있는 정권이라면 지금 일부 보수세력이 노리는 보혁 대결의 구도를 차단해야 한다. 그들의 준동에 맞장구를 치며 보수 대연합의 동력에 불을 붙일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은 결코 촛불로 불장난을 하지 않는다. 이제 국민들도 촛불을 그만 들었으면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살피는 보수 진영의 겸허한 자기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