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보도지침'이라는 게 있었다. 5공초 신군부 세력은 언론사에 날마다 기사보도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은밀하게 내렸다.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 여부와 방향, 형식까지 정해 시달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던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효율적 통치를 위한 언론 통제였던 것이다.
요즘 분위기가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가 날로 그 도를 더한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코드에 맞지 않는 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촛불의 발원지였던 인터넷 재갈 물리기에 안달이 나 있다. PD수첩 타도와 KBS사장 끌어내리기 등 공영방송에 가해지는 위협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다. 미국산쇠고기 졸속협상, 광우병에 대한 비판이 체제전복을 시도한 중대범죄로 부풀려지고, 임기를 보장받는 공영방송 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온 정권이 팔을 걷고 나선다. 여기엔 민주적 절차도 실정법도 아예 무시된다.
인터넷 재갈 물리기도 도를 넘어섰다. 인터넷실명제의 전면실시, 사이버모욕죄 신설, 심지어는 '인터넷 사이드카'까지 도입하겠다고 한다. 주식 등락 폭이 클 경우 일시적으로 매매를 중지시키는 사이드카 제도처럼 특정 이슈에 대한 댓글이나 조회수가 갑자기 늘 경우 인위적 개입을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한마디로 온라인 여론을 조정하고 검열하겠다는 것 아닌가.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권력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은 과거 독재시대 집권자들에게나 있음직한 발상이다. 그런데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출발한 이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3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쇠고기파동 이후 흔들리는 국정을 추스르고 남은 4년간의 국정을 편히 가져가려는 생각인 것 같지만, 오판일 따름이다.
이런 억압적 분위기는 곳곳에서 코드 맞추기를 부르며 사회를 획일적으로 몰고간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국방부가 불온서적 23종을 선정해 병영에서 추방하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에도 불온 딱지가 붙었다.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나님'까지 반정부·반미 서적으로 찍힌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권력자와 부자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거할 자리가 없다고 해서인가, 과도한 축재가 이웃에 대한 도적질이라는 유언비어(?)가 심기를 긁은 걸까.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은 한 술 더 뜬다. 지난달 30일 전경련 하계포럼에 참석해 "촛불집회를 보며 우리 사회에 좌파가 얼마나 많은지를 요즘 새삼 깨닫는다"며 촛불시위 참여자를 좌파로 매도해 국민들을 아연하게 했다. 코드 맞추기 경쟁은 서울 관악구의회가 벌인 정치 코미디에서 절정에 이른다. 구의회가 미국산쇠고기 단체급식 사용금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지 보름 만에, 한나라당 구의원들이 부시 방한을 앞두고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 와중에 경찰청이 어청수 청장 동생 소유호텔 성매매 의혹을 보도한 방송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하도록 요구하는 '사적인 통제'까지 끼어들고 있다.
국민에게 외눈박이를 강요하는 집권세력과 일부 보수언론의 행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미국산 쇠고기와 부시 방한에 대한 반대, 한미FTA와 재벌들의 전횡에 대한 비판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0%대로 나오는 것까지 국민이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며칠 전에는 60만 기자를 회원으로 거느린 국제기자연맹(IFJ)이 나서 이명박 정부의 억압적 언론정책에 경고장을 보냈다.
논어의 계씨(季氏)편에는 '온 세상에 도가 있으면 서민들의 의논이 없게 된다(天下有道則庶人不議)'는 구절이 있다. 이를 다산 정약용은 "태평성대에도 비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제도를 세웠는데, 일반 서민들의 자유로운 의논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정통성 있는 권력이 도에 합당한 통치를 한다면 특별히 서민들의 논의가 두려울 것 없다"고 해석했다. 독선과 아집으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보다 제대로 된 정치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