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8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국민이 안중에 있기나 한 건가." "2%의 본색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말 한 술자리에서 나온 대화 내용이다. 반정부 세력의 선동도 아니고 장삼이사, 보통시민들의 푸념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6개월여, 법치와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우리 사회의 활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퇴행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주 일어났던 몇 가지 상징적인 일들을 돌이켜보자.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움직임, 국가경쟁력 확립을 위한 법질서 확립방안, 사법 60돌에 즈음한 이 대통령의 발언 등에서 과거 권위주의로 회귀해 가는, 거꾸로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종부세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가 우리 경제를 덮치고 민생은 파탄지경인데 난데없는 종부세 완화 타령이 될 법한 일인가. 일에는 순서가 있고 완급이 있다. 구멍가게 운영에도 일의 앞뒤가 있는데 국가 대사를 논하는 데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과연 종부세 문제가 국민의 생존 문제를 덮을 만큼 절박한 것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눈앞의 위기는 제쳐놓고 보완책도 없는 종부세 무력화 기도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일처리 과정도 그렇다. 여론을 외면한 일방적 추진이 여당의 찬반 논란마저 잠재워 버렸다. 주무장관은 "한 명의 국민이라도 억울한 피해를 입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종부세를 부자를 겨냥한 악법으로 규정했다. '2%를 위해' 전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것으로 읽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당의 대처방식은 더욱 한심하다. 종부세 개편에 대한 반대가 드세자 찬반양론이 맞서며 한때 활발한 토론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잘못된 세금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쏙 기어들어 가고 말았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하겠다는 것을 거부하기 어렵고, 정부와 당의 위신을 모두 고려해야 했다"는 변명이 군색하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이 정부의 거수기 노릇을 자처한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지난 26일 사법 60돌 기념식장에서 대통령의 축사도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듯한 오만함으로 비친다. 이 대통령은 "사법의 포퓰리즘을 경계한다"며 "사법부도 법 앞의 평등이 모두에게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잘하고 있으니 따라오라는 투이다. 광복절 비리 경제인·정치인 등을 무더기 사면한 것과 앞뒤가 맞지 않다.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범법행위를 한 비리 기업인들의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면죄부를 주는 게 법 앞의 평등을 실천하는 길인가. 이런 가운데 생존권 차원에서 촛불시위를 한 유모차 주부들을 사법처리하겠다는 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질서 확립방안에는 국민의 기본권조차 안중에 없어 보인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이 참가하는 합동수사팀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강력한 공안기구를 만들어 여론에 재갈이라도 물리겠다는 이야기인지…, 신군부 시절 합수부를 보는 느낌이다. 평화시위구역 설치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침해할 소지마저 엿보인다.
이렇듯 무리한 통치술의 밑바닥엔 늘 이명박식 CEO리더십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강부자 인사, 쇠고기 파동 등 국정의 파행을 부르는 화근이 되었다.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 아래 밀어붙이기로 성과를 얻었던 전근대적 기업의 CEO, 그 달콤했던 추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도 기업을 위해 봉사하는 사원이 아니다. 국가는 다양한 가치의 조화를 이뤄야 하고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을 통합해야 한다. 국가의 지도자는 지역과 계층, 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윤 창출에만 매달리는 CEO와 달리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개발독재 시대의 CEO처럼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자세를 낮추고 국민의 뜻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일사불란함만 요구하는 CEO형 리더십을 계속 고집한다면 4년 내내 국민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