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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세희의 미국論 /이명원

지도자다운 품격·윤리 갖거나 민중의 고통 공감이라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11-10 20:09:5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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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던 날, 청와대는 서둘러 한국의 대통령 역시 오바마와 닮은 점이 많다고 자평했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발가락이 닮았겠지, 한 언론은 풍자를 통해 청와대의 '말장난'에 뾰족하게 응수했다. 대공황기의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실의에 빠진 미국인을 위로했다. 한국의 대통령 역시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빗나간 '흉내내기'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광대야 웃음이라도 전해주건만, 대통령의 흉내내기는 쓴웃음만 유발하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를 말하다 보니, 나는 한국의 한 원로작가가 생각났다. 그의 이름은 조세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는 산업화 시기의 어둠과 풀뿌리 민중의 고통에 대해 정직하게 증언했다. 힘없는 '난쟁이들'의 한계상황은 그때나 이제나 변함없으니, 애통함이 절절하다.

조세희 단편소설 가운데 '어린왕자'가 있다. 이 소설에도 '루스벨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시간을 초월한 여행이 가능하다면 나는 지금 당장 미국, (…) 오늘의 부자 나라가 아니라 출구를 찾던 대공황기의 어려운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때 그 나라의 대통령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다행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답게 그는 알맞은 말을 국민에게 전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이나 지근거리의 경제관료의 말에서 '지도자' 다운 품격과 윤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대통령 주변의 경제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도 그들은 더 잘살 수 있다는 환각을 부추기면서, 삽질경제에 대한 탐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조세희가 고평가하는 루스벨트의 경제브레인 렉스포드 지이터크웰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물질주의적 환각을 무책임하게 부추기는 대신, '미국의 어둠'을 가감 없이 증언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사진작가와 함께 비참한 경제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리하여 사진작가들이 찍은 어려운 국민 생활상은 곧 덜 어려운 국민, 괜찮게 사는 국민, 불황과 상관없이 잘사는 다른 국민에게 보여줬다. 동시에 사진작가들은 "도시로 돌아와 부유한 사람들의 행복한 생활상도 함께 찍었다. 그 사진 가운데 얼마가 공적인 분노를 야기시켰다.

대통령의 경제브레인은 '분노의 폭발'을 원했던 것일까. 조세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경제학자가 생각한 것은 분노의 폭발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브레인은 양심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고통받는 국민의 가난을 드러내 고통 덜 받는 다수에게 제시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의 놀라운 계획에 힘입어 제작된 당시의 사진 작품들은 고통받는 국민 생활의 증거로 미국 국회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국의 대통령 이명박이나 기획재정부 장관인 강만수가 미국에서 배워야 할 태도는 이런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위기가 '정신적인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윤리적 태도를 취한다. 미국의 경제브레인인 지이터크웰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부자들의 '양심'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종부세 폐지'나 '부동산 활성화' 운운하는 나이브한 정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오바마와 닮았다는 한국 대통령의 자화자찬보다는 '하나의 미국'에 대한 사회통합적 사고와 민중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

소설가 조세희는 이어지는 문단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고 있다. "얘야, 너는 이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옛날 어느 나라의 수상이 자신의 아들에게 했다는 유명한 말이라고 작가는 소개하고 있다. 자못 울림이 큰 질문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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