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갑자기 석유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버스와 지하철이 서고, 냉장고와 엘리베이터도 멎을 것이다. 은행업무가 마비되고 물류는 멈출 게 뻔하다.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생산이 중단되면서 옷과 화장품, 일상용품과 의약품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지리라. 상상만으로도 끔찍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일상과 세상의 재화 대부분은 석유를 원료로 하거나 그 동력을 기반으로 한다.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남짓 석유를 사용하면서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석유 이전 수천 년간 인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이 '호모오일리쿠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다. 호모오일리쿠스는 석유를 먹고 쓰고 입으며 살아가는, 석유 없이는 생존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빗댄 말이다. 석유와 인간의 관계, 석유고갈 시대 인간의 비극적 삶을 조명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 시대를 좌우하는 키워드로 '피크오일(Peak Oil)'을 부각시켰다.
피크오일은 1956년 미국의 지질학자 킹 허버트가 도입한 개념이다. 말 그대로 석유 생산의 정점을 의미한다. 정점은 최고의 지점을 나타내지만 조만간 닥쳐올 내리막길도 시사한다. 좀 더 신랄히 말하자면 필연적으로 닥쳐올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는 19세기 중반부터 석유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물질문명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159ℓ인 석유 1배럴이 내는 열량은 고대 노예 12명의 1년 노동량과 맞먹는다. 석유가 문명 발전을 얼마나 강력하게 추동해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명이 석유에 의해 지탱되고 일상이 석유에 중독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류는 유한 자원인 석유의 고갈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고유가를 겪으면서 피크오일 이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전문가들이 앞다퉈 전망치를 내놓는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AEA)는 피크오일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피크오일 이후 석유 생산은 몇 년간 소강 상태를 지속하다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석유 사용이 제한된 인류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를 수십 년 안에 찾아내지 못한다면 문명의 몰락은 피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석유문명의 종말이 20년 안에 올 것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40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어쨌든 비극은 바로 우리 코앞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의 실체조차 짐작하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석유시대의 종말을 앞두고 다양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제로화를 선언한 도시들이 나오고 석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의 개발, 로컬푸드와 지역화폐의 구축, 자전거타기와 도시텃밭가꾸기 등 다양한 운동들이 그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는 정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석유시대의 비극적 종말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채 소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의 1인당 석유소비량은 연간 16배럴로 세계 5위이다. 한 사람이 하루 물섭취량의 6배인 7ℓ를 소비한다. 더 큰 문제는 해마다 소비량이 늘어나는 데 있다.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에 그치는데도 말이다.
새 정부 들어 개발만능이 최고의 미덕으로 판을 치고 지속가능성의 가치는 퇴색하고 있다. 고도의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파괴와 기만을 동반한 야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반도를 동강내는 대운하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무모한 발상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탐욕은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생명의 가치를 외면한 천박한 개발논리가 '녹색 성장'이라는 짙은 화장을 하고 국민을 현혹하기도 한다.
석유 종말의 시대, 유일한 생존전략은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과도한 성장을 통한 소모적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시대를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눈앞의 험난한 사막을 건너기 위해선 석유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