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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메아리 /하창식

비움 커질수록 더 큰 반향…마음 속 탐욕 버려야겠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2-13 19:56:0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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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신작로에는 지하도가 하나 있다. 20미터 남짓 되는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지하도이다 보니, 다니는 사람이 많질 않다. 불현듯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철로 아래 굴다리를 함께 지나다니던 기억이 나서, 어제는 가까운 횡단보도 대신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지하도를 건넜다. 둘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왕왕거리며 지하도 내에서 메아리 되어 돌아다녔다. 그 소리에 문득, 메아리가 우리 삶에 건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보이오티아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에코 요정에 얽힌 그리스 신화가 생각난다. 수다쟁이 에코 때문에 제우스의 외도 현장을 놓쳐버려 화가 난 헤라 여신, 그 여신이 내린 저주로 인해 말 대신 상대가 한 말 중 귀로 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해야 하는 벌을 받은 에코 요정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안타까움, 외로움 그리고 그리움이 아득한 메아리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신화가 아니던가.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길은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거절당하기까지 한 에코 요정, 상심한 나머지 숲 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혼자만의 가슴앓이로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은 껍데기마저 사라지고 결국은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는 신화이다.

메아리, 에코 요정의 신화에서 우리가 배움을 얻는 것은 바로 비움의 철학이 아닌가 한다.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도나 굴다리엔 메아리가 울리지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 그곳들에 채움보단 비움이 커질수록 메아리는 더 큰 반향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 수 없어 갔다오./(중략)" 청마 선생님이 지으신 '메아리' 노래를 벗 삼아, 식목일이 되면 학교 뒷동산에 나무를 심던 기억이 새롭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만남은커녕 부끄러움에 산 속 깊이 몸을 숨긴 에코 요정, 이 땅에서는 6·25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동요로 되살아났었다. 보릿고개로 대변되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의 상흔과 가난의 아픔이 있던 세월, 메아리는 어린이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아지랑이를 아른거리게 하던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였다. 이주홍 선생님의 동화로, 이원수 선생님의 동시로, 우리와 함께한 메아리였다.

이 땅의 산들이 푸르게 물들여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산 속에 살지 않고 우리 가슴 속에서만 살아 있는 메아리이다. 황금만능주의 시대이다. 물질이 풍요롭게 채워질수록 비워야 할 마음의 자리는 더욱 좁아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2009년, 오늘 이 시간의 언저리에서 갑자기 떠나간 메아리가 더욱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됨으로써 엉뚱한 자기애에 빠져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 수선화로 변하지 않았던가. 수선화의 전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교만이나 허영들로 인해 우리는 자신들을 나르키소스가 되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에코 요정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하여금 나르키소스를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하고 끝내 수선화로 변하게 하였다. 나르키소스처럼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을 위기와 불행으로 이끄는 것은 이기심이나 탐욕 등과 같은 우리자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또 다른 에코 요정 때문은 아닐까. 나를 채우기보다 나를 비우도록 애써야겠다. 나를 더 많이 비움으로써 더 큰 겸손과 친절과 사랑이 반향되어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메아리가 되돌려주는 것은 마지막 음절뿐. 흘러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아닌 가장 현재에 가까운 것만을 되돌려준다.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는 없지 않는가. 강물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같이 '지금 이 순간의 새로움에 충실하라'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메아리이다. 그뿐인가. 메아리는 '베푼 만큼 되돌아온다'는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하지만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크고 더 아름다운 법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면 어떠랴. 내가 베푼 작은 친절로, 내 얼굴에 머금은 미소 하나로, 그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가 아니라 내 가슴에 더 큰 행복의 파랑새가 둥지를 틀 테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수필가·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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