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경제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폭탄 돌리기'처럼 보인다. 통계상의 실업자가 100만에 육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제조업 가동률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명백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대졸 순수취업률 역시 위험한 수준인데, 들썩거리는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근거로 한국경제를 낙관하는 발언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와중에 일자리는 당연히 더욱 줄어들고 있다. 비정규직은 물론이거니와 정규직 사원들 역시 거리로 떠밀리고 있고, 정부와 기업은 무지막지한 해고를 '구조조정'이라면서 연일 권유하고 있다.
오늘의 상황은 단순히 경기침체나 후퇴기가 아니다. 그것은 경기회복의 신호가 되는 전통적인 요소들, 가령 고용률·제조업 가동률·소비증가·금리 등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과 증권시장만이 기이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는 이상징후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시장의 구조적 안정성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대거 풀려 있는 현금자본이 일종의 마지막 쿠오바디스를 감행하기 위해서 벌이는 절망적인 '투기상황'이며, 결국 이러한 투기상황에 평범한 개미들이 집단적으로 뛰어들자마자, 교활한 투기자본들이 '차익'을 취한 후 곧바로 철수하게 될 대붕괴의 징후를 보여주는 황혼기의 '착시현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사실 이런 국면에서 '개미'로 상징되는 평범한 시민이 취해야 될 태도는 협동과 연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거의 '알바' 수준으로 전락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정부에 압박하는 일이며, 일상생활에서 가장 커다란 압력으로 작동하는 주거와 교육 그리고 의료비용의 점증하는 압력에 대항하여 사회안전망을 확대시키는 정책을 오히려 집중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무늬만 '고통분담'이라는 위로부터의 시장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 나눔' '품위 있는 사회'라는 좀 더 인간의 존엄성에 가까운 미래사회를 대비할 수 있다.
동시에 '개미'들 자신의 '이중사고'에 대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사실 오늘과 같은 경제적 대붕괴의 시대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기업이나 후견인인 국가가 아니다. 개미들이야말로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대붕괴의 시대에 기업과 국가는 평소에는 '개미'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무지막지한 해고와 구조조정을 아무런 저항 없이 해나가고, 운이 좋으면 시장 자체를 비경쟁적인 독점 또는 카르텔의 형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미'의 이중사고는 무엇인가. 체제가 교묘하게 권유한 결과이겠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결국 '나 혼자는 살 수 있다'는 사적 해결책 모색과 오히려 고용불안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투자자'의 시선으로 이행시키는 기묘한 허위의식이다.
만일 한국인이 주거와 교육과 의료 분야에 기울이는 평생의 노력을 연대와 협동 등 집합적 해법을 통해 모색해 간다면, 일상의 점증하는 '위험사회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난 '품위 있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개미'들은 '공동체'에 대한 깊은 책임과 신뢰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이런 공동체성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훼손해 온 역사에 과잉 적응한 나머지, 일단 위기가 닥치면 모든 해법을 개인적 수단으로 강구하고자 애쓴다.
직장에서의 노동조합이나 지역에서의 협동조합의 모색이 이런 위기의 순간에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텐데,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개미'들은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과 펀드를 순환시켜 안정자산을 확보해야겠다는 욕망에 경쟁적으로 가세한다. 개미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 정체성보다는 '투자자' 정체성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오늘의 몰락해가는 신자유주의의 강화는 전 국민을 '투자자'의 심리상태로 고착시킨 체제의 전략이 주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미'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정열과 자본을 투자해야 할 곳은 '시장'이 아니다. 개미들은 '투자자'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연대'하고 '협동'하는 공동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지금 실천해야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