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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장산 자락의 춘천(春川)을 돌려다오! /장희창

자연 앞에 겸손…지배 아닌 공생

파우스트 등 고전, 현대에도 '큰 울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5-06 20:36:2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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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춘천(春川)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1억 년 전 화산폭발로 생긴 해운대 장산. 그 자락을 적시며 흐르는 춘천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 때도 넘치지 않으며, 때로는 콸콸 때로는 졸졸거리며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굉음소리와 함께 불도저가 유장하게 흐르던 천변을 뭉개버리고 일렬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버드나무도 소나무도 우두둑 쓰러졌다. 물줄기를 이리저리 굽이치게 하던 온갖 형상의 크고 작은 바위들, 그 하나하나가 영겁 세월의 지문인 바위들도 다 뽑혀나갔다. 몇 달 후. 춘천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사우나탕 욕조와 흡사한 물웅덩이들이 들어섰다. 사우나탕에는 피라미도 버들치도 살 수 없다.

주민의 동의도 하늘의 허락도 없이 1억 년 자연의 지혜로 형성된 아름다운 젖줄기를 이렇게 유린해도 되는 것인가? 무참하게 성형수술 당한 채 허연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춘천을 보니, 4대강 정비 사업 또는 대운하 사업의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온통 삽질 소리가 요란하다. 옛 부산시청 자리에는 100층이 넘는 초고층의 '롯데' 빌딩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도시환경을 압도하며 치솟고 있다. 롯데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또 어떤 건설회사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명작임을 말하면서, 자사의 아파트도 그에 못지않은 명품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세계문학의 대작 '파우스트'는 근대 이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성장 제일주의와 맹목적 개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작품이다. 예컨대 자신의 오랜 보금자리를 지키려고 하던 노부부가 거침없는 개발주의자인 파우스트와 그 하수인인 철거대행업자 메피스토펠레스의 폭력에 의해 불태워져 죽는다. 또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화폐를 남발함으로써 경제파탄을 초래한다. 눈먼 파우스트는 제방 공사장의 삽질 소리를 듣고 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파우스트를 파묻을 무덤을 파는 악령들의 삽질소리였다. 그러므로 괴테는 일갈한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지한 행동력이다." 저돌적인 건설의 현장에서 문명의 무덤을 보는 괴테의 혜안은 참으로 현대적이다.

괴테의 문학적 상상력은 서구 근대이성의 빛과 암흑, 도구적 이성,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면서 또한 지금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의 뿌리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파우스트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근대 이성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지배가 아니라, 무엄하게도 자연에 대한 정신의 지배를 도모함으로써 오늘날 인류가 환경 대재앙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 이후의 역사는 자연과의 소통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이기적 탐욕의 역사였다. 선구적인 생태주의자 장자의 관점을 따르자면 이렇다. 기계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기심(機心)이 생기고, 기심이 생기면 순백한 마음이 없어져 도(道)가 사라진다.

이처럼 고전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의 모순을 투시한다. 그런 만큼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 없이는 고전 작품의 영혼이 살아나지 않는다. 겹겹이 쌓인 오만과 편견 때문에 때로는 피아를 식별하기조차 힘들다. 내 마음 속의 물신주의도 냉철하게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이며, 실천하는 만큼 바뀐다.

'파우스트'가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혼미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정상적인 사회라면 넘지 말아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감성을 갖춘 대작가의 통찰력에 포착된 인간사회의 진실이다. 요컨대 오늘 우리 시대 인문학의 과제는 타자에 대한 배려, 자연 앞에서의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불도저의 마음, 기계의 마음을 버리고 우리 안의 자연을 되찾음이고, 독선과 지배가 아닌 연대와 공생의 원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함이다.

흙탕물로 누렇게 변색된, 이름뿐인 춘천을 걸으면서 나는 외친다. 춘천을 돌려다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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