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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아버지의 회초리 /하창식

인생에서 단 한 번 어릴적 '사랑의 매' 뜻 모른 채 지내다아비된 후 깨달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5-08 20:24:4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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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과 2009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200점이 넘는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던 김연아 선수, 그들로 인해 행복했던 지난 3월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투혼을 불사르는 열정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 선 젊은이들, 자랑스러운 그들의 '위대한 도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김인식 감독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 훌륭한 두 스승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온 여러 코치들과 선수 가족들의 노고 또한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체벌을 한 교사를 학생이 고발하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 뺨 맞은 딸과 아들이 경찰에다 100m 이내 접근금지 신청을 내는 세상이다. 학교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안타깝다. 2009년 5월, 다시 다가온 가정의 달을 맞아 성찰해 보았다. 내 생애 가장 큰 스승은?

중학교까지도 입시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만화에 빠져 공부를 소홀히 할까 노심초사하시던 게 우리네 부모님들 모습이셨다. 어린 나에게도 만화책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어느 날, 시리즈로 된 만화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수중에 돈은 없고, 만화책을 빌리겠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다가는 경을 칠 노릇이고. 동네친구의 꾐에 빠졌었던가 보다. 벽에 걸려 있던 아버지의 바지가 눈에 띄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동전 몇 개가 손에 잡혔다. 그다음 꺼낸 동전으로 만화방으로 달려가 만화책을 빌렸다. 바깥나들이에서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구석에 숨겨 둔 만화책이 발각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바지 주머니를 손댄 것까지 들켜 버렸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교훈을 따끔하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자식 교육을 잘못했다는 후회 때문이었을까. 그날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회초리를 드셨다. 한 마디 말씀도 없으신 채로. 다음 날도 끄떡없이 학교를 간 것을 생각하면 그리 많이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엔 '죽도록 얻어맞았던'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어린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나 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를 드신 그날 이후,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뵌 적이 없다. 2년 전, 향년 86세를 일기로 운명하실 때까지 그랬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엔….

어린 자식의 종아리를 한 대 한 대 때릴 때마다 가슴으로 흘린 피눈물이 알알이 맺히며 생겼을, 그날 당신의 가슴에 새겨진 멍, 그 아픔, 내가 맞은 회초리의 아픔보다 훨씬 더 컸을 당신의 그 아픔을 왜 진작 헤아리지 못했을까. 아이 셋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야 그 회초리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나는 참 못난 사람이다. 이웃이나 사회에 큰 폐 끼치지 않으면서 고만고만한 삶이라도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만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버지의 그 회초리 덕분이었으리라.

보릿고개 넘으며 살아온 여느 부모님들처럼,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기에,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그런 만큼 자식들에게 당신의 인생 모든 것을 걸어 이것저것 바라는 바도 많으셨을 것이다.

살아 생전에,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불효한 적이 어디 그때뿐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후로 백 마디의 말씀 대신 오직 온화한 미소로 나를 길러 주시고 필요한 그 자리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신 덕택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한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 모두가 훌륭한 스승들이셨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 누구보다 더 큰 스승은 아버지셨다.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그날 그 풍경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오늘도 내 가슴을 적신다. 아버지, 오늘 따라 당신의 회초리가 더욱 그립습니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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