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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소나무를 심은 뜻은 /정찬주

능히 강풍 견디고 엄동 넘길 강건함…그 威儀 본받아 탁마하고 싶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6-12 20:36:1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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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사립문 앞에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었다. 수령이 모두 20년생이라고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P 사장이 나주에서 트럭으로 실어와 일꾼 두 사람을 데리고 하루 종일 애를 썼다. 뿌리 부분에 붙은 흙덩이 분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흐뭇하여 밤에도 달빛에 비친 다섯 그루 소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마치 '세한도'에 나오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소나무 같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내 여생을 묵묵히 지켜볼 소나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지기도 했다. 당나라 문인 유유주(柳柳州)는 그의 '괴송서(怪松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나무는 바위틈에 나서 천 길이나 높이 솟아 그 곧은 속대와 거센 가지와 굳센 뿌리를 가지고 능히 추위를 물리치고 엄동을 넘긴다. 그러므로 뜻있는 군자는 소나무를 법도로 삼는다'.

나무시장에서 조경을 위해 구입한 소나무라면 나의 애정은 덜했을 것이다. 나무는 소유하고 집착하는 대상이 아니라 거기 존재하여 관계를 가짐으로 해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뒷사람의 마음을 충만케 하는 생명인 것이다. 소나무가 내 식구처럼 여겨지고 관심이 더 가는 까닭은 P 사장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선물한 그의 한 마디는 내게 흥미를 더하게 했다. "저는 나무와 대화를 합니다"고 말한 그 한 마디에 나는 '나무와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하고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조경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소나무를 심고 간 지 보름 만이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내 산방을 방문하여 나는 그 부부에게 다슬기 수제비를 대접하면서 꽤 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삶도 거친 들판의 소나무와 같이 풍진 세상을 견뎌온 실존임을 알았다. 그는 10전 11기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1978년도에 K대 법대에 입학했다가 2년 만에 야당 정치인의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의 한 농장에서 숨어 지냈던 것이 조경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수배가 해제되어 서울로 돌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왕궁 조경과 88올림픽촌 조경 사업을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아파트단지 조경에 뛰어들면서 곡절이 많았다. 그래서 사업을 광산업과 영화제작 등으로 바꾸게 되는데, 그때마다 실패하여 세 번이나 자신의 인생을 끝내려고 시도했다. 결국 처음 꿈꾸었던 직업으로 돌아온 것은 고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늘 보았던 운현궁 정원의 매력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서 무슨 조경을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본 조경과 우리나라 조경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무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꺾어 분재를 만드는 그들의 방식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은 자연석만 해도 많이 쌓아서 조경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옛 선비들은 바위를 가져 오더라도 나무 아래 몸 하나 쉴 수 있는 한두 개 정도만 놓았습니다. 강한 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 같은, 힘을 과시하는 조경은 우리나라 조경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조경업자들이 일본을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그는 우리나라 묘지문화에 대해서도 개탄했다. "어느 부자가 제게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최고의 조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지만 거절했습니다. 산 사람도 그런 조경을 하지 못하고 사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 호화로운 조경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손가락질 받는 조경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얘기를 듣는 동안 내 관심사는 언젠가 새로 지을 내 집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집 앞에 만들지 말고 우리 방식대로 후원을 만들라고 했다. 앞마당에 굳이 나무를 심는다면 왼쪽에 소나무 세 그루, 오른쪽에 감나무 한 그루, 측면에 매화나무 대여섯 그루를 심은 뒤 마당은 잔디로 포장하지 말고 마사를 깔고 아침마다 비로 쓸라고 했다. 빗자루 흔적이 선명한 마당에 물이 좀 뿌려진 풍경이야말로 조선의 진짜 마당이라는 것이다.

그가 심은 소나무는 이제 솔순에서 침엽이 솟구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말대로 소나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세월을 비껴 서지 않는 저 소나무들은 능히 강풍을 견디고 혹독한 겨울을 넘기리라. 나도 저 소나무의 위의(威儀)를 본받아 탁마하고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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