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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주사회의 백성과 대왕대비전 /이지양

기묘하게 공존하는 시민의식과 백성의식 흥분 가라앉힌 뒤 냉정하게 비판하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6-24 20:23:1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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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집권한지 1년 반이 지났다. 긴긴 시간 누적된 피로감이 유독 내게만 엄습하는 것은 아니리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대통령을 꾸짖거나 여당을 욕하지 않으면 하루가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때도 그랬다. 그때의 신문과 방송을 뒤적여 보라. 5년 동안 어떤 지경이었던가를. 탄핵을 시작한 이래 하루도 빠끔한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노대통령 스스로 식물대통령이 된 것 같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표현했을까.

국민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 걸까. 버릇 고약한 아이처럼, 업어 달라고 떼쓰다가 엄마가 업어주면 그때부터는 뒤로 자빠지며 울고 버둥대는 아이처럼 그런다. 자기 손으로 뽑아 놓은 대통령을, 뽑아 놓은 그날부터 못살게 욕하고 들볶는 것이다. 집권자에게는 저항하고 투쟁해야만 민주적으로 사는 실감이 나는 것일까. 노무현 정권 때도 편파적 응징과 적대적 약 올리기는 결코 적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정책 실수와 정책 실패도 적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 손으로 지금의 여권을 압승시키며 정권을 교체하지 않았던가. 국민들은 그렇게 준열한 심판을 통해 재선택을 했지만, 선택 이후에는 별로 효율적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목소리 큰 쪽이 승리한다고 믿는 듯, 여전히 광장에 모여 외치고 부수는가 하면 공권력은 물대포를 쏘고 검거하며 난리 법석을 피우다가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현실 비판이라기보다는 과거 찬미에 쏠린다. 이것도 새삼스럽진 않다. 그전부터 5년마다 대왕대비전이 건립되는 느낌을 받아 왔으니까. 대통령직 5년을 수행하면 생가를 복원 혹은 보존하고, 사저를 건립하며, 활동 센터를 만들고, 기념 공원이나, 무슨 기념 상 같은 것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관행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민주 사회에 5년 계약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서, 제대로 봉사했는지 안했는지 평가할 겨를도 없이 종신토록 예우가 보장되고 활동 사업이 전개되는 대왕대비전이 5년마다 탄생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은 비록 비정규직으로 하루에 3가지 직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그렇게 낸 세금으로 5년 단임으로 수고한 대통령을 종신토록 대왕대비전으로 섬기는 것에는 별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합법적 예우와 법 이외의 관행적 예우 정도쯤이야 해도 좋다고 여기는 것일까?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대승적 차원에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치자. 그 점을 그렇게 인정하더라도, 민주 사회의 시민의식과 왕조 사회의 백성의식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적법한 사실 조사를 무조건 정치 탄압이라고 외치고 본다든가,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민주화의 화신인 것처럼 우상화하고 찬미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따져볼 수는 없는 걸까. 그 점이 너무도 아쉽다.

최근에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일련의 시국선언이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장화를 신고 다리를 긁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 시국선언은,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보장, 공정한 수사 촉구, 소외계층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런 시국 선언에 사회적 호응이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교수들에게 포괄적 선언을 기대하는 시대가 아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매뉴얼이 손에 탁탁 잡히는 국정 내비게이션의 새로운 비판 버전을 기대하는 시점인 것이다. 지금은 낮은 목소리로 최대한 싸늘하게, 그리고 정확한 정밀 진단을 내리는 목소리를 기대하게 된다.

요컨대, 국민들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주인이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공복들이 긴장해서 주인의 명을 경청할 테니까. 민주 시민들이 느닷없이 대왕대비전을 기리듯 백성의식을 드러낸다면, 현재의 공복들은 빙긋이 웃으며 군왕의식과 관료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냉정하고 지혜롭기를 기대한다. 정밀하게 문제를 짚어야 한다. 그렇게 짚어내는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집권자는 독재자이기 전에 바보일 테니까. 먼저 국민이 지극히 냉정해지자.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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