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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수, 혼돈 세상의 덫 /박창희

눈이 핑핑 돌 지경인 허망한 숫자놀음 벗어날 길은 무리수 거두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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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틀리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다'는 뜻의 동사다. 수가 틀리니 계산이 바로 될 리 없고, 진단과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우리 주변의 수 놀음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돈다. 요술인가 싶으면 현실이고, 실체를 알고 나면 허망해진다.

수(數)는 셀 수 있는 사물의 크기를 나타내는 값이다. 수학에서는 자연수·정수·실수 따위로 구분한다. 중학교 때 배웠을 것이다. 실수(實數)는 유리수와 무리수로 돼 있고, 무리수는 '실수이면서 정수나 분수 형식으로 나타낼 수 없는 수'라는 것. 무리수는 어렵다. 해석학에선 극한·연속 따위의 개념으로 쓴다지만,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문제 하나. 무리수의 한자어는? ①無理數 ②無理手.

아닌 게 아니라 수가 문제다. 그 때문에 수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의 수가 다르고 국민이 이해하는 수가 다르다. 재벌의 수, 정치의 수, 언론의 수 또한 셈법이 제각각이다. 국민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가령 삼성전자가 몇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거나, 권력자가 수천 억을 해먹었다고 할때 그 수는 분석되지 않는다. '많다'는 느낌이 강할 뿐이다. 횡령액이 수백 억을 넘게 되면 500억 원이나 700억 원이나 오십보백보다. 200억 원의 무게는 종잇장 만큼이나 가볍다.

정부가 4대 강 살리기에 쏟아붓기로 한 예산을 보면 '수'가 허망해진다. 4대 강 예산은 지난 4월 중간발표때 13조9000억 원에서 한달 반만에 16조9500억 원으로 늘었다. 연계사업을 포함하면 22조2000억 원이다. 22조 원은 전국민이 70만 원씩 내야 만들어지는 돈이다. 첨예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사업을 강행할 태세다.

천성산 지킴이로 통하는 지율스님은 지난 2년동안 거리에서 '수치 횡포'에 맞서 싸웠다. 일부 언론들은 지율스님이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를 중단시키는 바람에 2조5000억 원의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고 보도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치였기에 스님은 소송과 반론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각종 자료와 보고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오산(誤算)이자 오보임을 밝혀냈다. 2조5000억 원이란 손실액은 145억 원으로 낮춰졌다. 해당 언론은 오보를 인정하고 정정 보도를 냈다. 그뿐이었다. '2조5000억-145억= 2조4855억'이란 차액은 공수표였다. 2조4855억을 부풀린 죄는 누가 져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입을 닫고 있다.

스님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써 놓았다. "나는 이 소송과 반론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악령이 자라는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정되어야 할 수치는 손실액이 아니라, 손실액에 빼앗긴 우리의 본마음이다."

600만 달러. 이는 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작용한 수치다. 대통령은 실체도, 소유도, 용도도 분명치 않은 유령같은 돈다발에 수모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통함이 분노로 변하는 지점 역시 바로 '수'였다. 도덕적인 자에게는 가혹할 만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은 이에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는 누가 재단한 것인가.

'수'는 일상생활을 강고하게 지배하는 심리적·물질적 기제(機制)다. 은행에선 단돈 천원의 대출이자가 밀려도 독촉전화를 한다. 몇 백만 원을 어쩌지 못해 목숨을 버리는 서민이 있다. 돈이 곧 목숨이다. 자본주의는 천태만상의 수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자기 증식에 눈먼 자본은 보이지 않는 '덫'을 쳐놓는다. 덫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혼돈 세상은 수의 관성을 부채질한다. 수가 돈이고, 많은 수가 이윤이며, 더 많은 수가 경제라고 가르친다.

수가 무섭다. 머릿수를 앞세워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거대 여당의 독주가 무섭고, 조 단위의 예산을 단시일에 편성하는 정부의 속도전이 무섭다. 무슨 수가 없을까. 한가지 대안은, '수'를 거머쥔 측이 무리수를 거두는 것이다. 그게 '마음 속 악령'을 지우는 길이고 모두의 불행수를 피하는 길일 테다.

앞서 낸 문제의 답은 ①번이다. ②번 무리수(無理手)는 바둑에서나 아주 가끔씩 통하는 수다. '무리수가 무리수를 부른다'는 바둑 격언은 일상생활에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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