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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부산시향이 안겨주는 행복 /박무성

새 수석지휘자의 감성적 연주에 감동

문화도시로 가는 길 부산시 투자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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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입장권보다 저렴한 단돈 5000원(A석)으로 세계적 기량의 지휘자가 연주하는 하이든이나 말러의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단언컨대 부산에선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말고는 없다. 요즘 웬만한 연주회나 뮤지컬 공연 입장권 10만 원 넘어가기 예사다. 둘이 가도 적잖은 부담이고, 네 식구가 음악회 한번 가려면 수십만 원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연 수준이 입장권 값과 반드시 정비례하지도 않는다. 우선 이 같은 비용 측면에서 부산시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 공연기획사들은 부산시향을 '공공의 적'이라고 한단다. 시향 입장권이 싼 탓에 다른 공연 티켓 값을 무작정 올려 받지 못하고, 수지 맞추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다.)

입장권 값을 떠나, 음악이 행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건 지난주 금요일 부산시향의 450회 정기연주회 덕분이었다. 제10대 수석지휘자 리 신차오(李心草)의 취임연주회를 겸한 이날 공연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후앙' 작품 20과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96번 라장조 '기적' 작품 1/96,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라장조 '거인' 세 곡으로 협연 없이 진행됐다. 취임연주회를 의식한 듯 지휘자도, 단원들도 다소 긴장한 탓에 처음에는 다소 경직됐으나, 금방 유연하고 화려하게 연주를 끌고나갔다. 리 신차오는 섬세했다. 그럼에도 강했다. 동양적 감수성이 객석에 넘칠 듯 전해졌다. (다른 청중은 여성적 감수성이라 했다.) 그럼에도 서구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앵콜곡으로 연주한 '아리랑'(최성환 작곡)에서 그 같은 감성이 특히 묻어났다. 한국 청중에게 '팬 서비스' 차원으로 들려주게 마련인 아리랑을 리 신차오는 국내 지휘자 그 누구보다도 절절하게 풀어냈다. 그의 어깨와 몸짓에서 배나오는 '덩실덩실 너울너울'의 감흥을 예민한 청중들은 보았을 것이다. 그는 청중에게 인사말을 하면서 "단원들이 자신을 믿어줬다"고 했다. 38세의 나이, 지휘자로선 결코 많지 않은 연륜임에도 그는 '음악도 결국 미(美)를 소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터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전임 수석지휘자 알렉산더 아니시모프의 연주도 훌륭했었다. 비록 러시아 음악을 '편식'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만큼 러시아 작곡가의 곡을 잘 이해하는 지휘자도 많지 않다. 시민들에게는 러시아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던 것이다. 아니시모프의 거친 듯하면서도 스케일 큰 연주 스타일은 리 신차오의 섬세함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부산시향이 종전과는 색다른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수석지휘자 선택은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엔 부산을 문화 불모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인프라가 열악하고 척박한 건 부인하기 어렵다. 부산시향을 비롯한 시립예술단 모두 어려운 여건 속에서 꾸려나가고 있다. 좋은 공연을 단원의 예술적 열정에만 의존하는 건 시대착오다. 부천시향이 급속하게 부상하는 건 한마디로 지원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아나가는 비결은 무엇보다 자치단체장의 예술적 관심과 애착에 있다. 부산이 명품 문화도시로 가는 길이 달리 있지 않다. 시향에 집중 '투자'해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보라고 부산시와 시장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부산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확인해보라고 말이다.

정신과의사이면서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호 씨는 이런 글을 썼다. '지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자연과 예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위대한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면, 나약한 인간은 예술을 만들었다. 사람이 만든 예술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부터 부산시향 공연 때면 단원들의 표정 하나하나도 눈여겨 본다. 아니 눈에 들어온다. 첫 인상이 다소 거만해보였던 악장 김동욱 씨는 지금은 그만의 자신감으로 비친다.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수석 첼리스트 양욱진 씨는 시종 연주를 즐기는 여유가 멋있다. 비올리스트 중 한 명은 후배 여기자가 '눈독'을 들이고 있어 자연 관심이 쏠리고, 수석 플루티스트 이화연 씨에겐 조만간 사인을 받아둘 작정이다. 부산시향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 벌써 다음 연주회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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