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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우병과 건망증 /제정임

대통령도 인정한 미 쇠고기 졸속협상

문제 지적한 이에게 손해배상 운운이라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8-17 21:02:4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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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漸入佳境). 일의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질 때 쓰는 표현이다. 한 육류 수입업체가 배우 김민선과 MBC 'PD수첩'에 대해 3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는 뉴스에 이 말이 떠올랐다. 'PD 수첩'에 대한 수사와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이어 연예인의 홈페이지 글에 대한 소송까지, 쇠고기협상 비판에 대한 앙갚음이 정말 놀라운 모양새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PD수첩'의 보도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겠다'는 김 씨 발언으로 수십 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협상 당시의 주무장관도 같은 논리로 'PD수첩'을 고소했다. 이들은 마치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은 무관한데, 방송과 여배우가 허위사실을 퍼뜨려서 피해를 입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게 사실인가? 지난해 5월, 수많은 시민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었던 수입위생조건 협상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단한 건망증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주장을 한다면 국민 다수를 우습게 본 양심 불량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지난해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 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습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도 예상됐습니다. 싫든 좋든 쇠고기 협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다 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측 비준을 이끌어내기 위해 쇠고기 수입 협상을 졸속으로 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추가 협상이 이뤄졌다. 그래서 미국 수출업자의 자율규제라는 미덥지 못한 형식으로나마 '30개월 령 이상'의 쇠고기와 일부 특정위험물질(SRM) 부위 등 광우병 감염 우려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쇠고기와 소 부산물의 수입을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렇게 바뀐 쇠고기 수입 기준도 우려스런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먹을거리 위생에 깐깐한 일본은 20개월 령 이상의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된 전례가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20개월 미만'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30개월 령 미만'을 수입허용 기준으로 했고, 뼈와 내장까지 들여올 수 있도록 했다. 광우병 원인물질인 변형 프리온은 감염된 소의 뼈와 내장 부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쇠뼈와 내장을 거의 먹지 않는 미국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비와 사골, 내장탕, 곱창 등을 즐겨 먹는다. 개선된 수입위생조건으로 봐도, 미국산 쇠고기와 그 부산물의 수입은 여전히 불안을 남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수입이 재개된 지 1년여가 지났는데도 미국산 쇠고기의 판매가 부진한 것은 이런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PD수첩과 김민선에게 부화뇌동해서' 끝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수준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한 것이다. 그렇게 잘 흔들리는 대중이라면, 정부가 그토록 대대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일부 언론이 엄청난 지면을 할애해 이를 뒷받침했을 때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일부 방송과 스타에게 선동되어서'가 아니라, '모든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는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예컨대 '미국인들은 자기네 쇠고기를 매일 먹는데 왜 우리만 난리냐'고 강변해도, '미국에서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20개월 령 이하의 어린 쇠고기'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불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30개월 령 이상의 쇠고기'까지 수입했을 전직 주무장관과 관련업체가, 이제 와서 협상의 문제점을 비판한 이들에게 손해배상을 운운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지난해 촛불을 들었거나 지지를 보냈던 모든 이들이 그때의 분노를 잊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당초의 잘못된 협상에 대한 책임 추궁은 증발한 채, 아기들의 건강을 걱정한 '유모차 엄마들'이 소환장을 받는 현실에 더 큰 분노가 쌓이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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