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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선과 일본, 500년 양국관계의 진짜 교훈 /이지양

새로운 한·일 관계는 눈앞의 이익 추구나 힘의 대결보다는 진정성 있는 협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04 20:52:1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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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단체든 모든 '관계'는 살아 있는 역동성을 보인다. 반전과 역전을 거듭하며 드라마틱한 변화와 굴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의 500년 관계를 뒤돌아보아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조선과 일본은 매우 묘한 관계에 있었다. 일본 측이 늘 사신을 파견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고, 조선은 그 요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 써가면서 16차례 사신단을 파견했다. 대개는 정권 승계 및 교체를 축하하기 위해서였고, 간혹 강화를 맺는다든가, 포로쇄환 같은 현안이 곁들여졌다. 우리측 사신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대체로 문화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데, 그것은 임진왜란을 겪은 다음에도 역시 그러하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물리적인 힘, 군사력으로 인해 조선의 문화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흔들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치 청나라의 군사력에 의해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다음에도 청나라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을 한편으로 지속했던 것처럼.

그런데 조선이 일본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한 때가 두 차례 눈에 띈다. 우월감이 후회와 반성으로 바뀐 순간이다. 그 계기도 '물리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명'에 대한 충격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충격이 표현된 것은 영조 24년이다. '조선왕조실록' 1748년 윤7월 30일 기사에, 통신사 일행이 일본 에도(江戶)의 질서 정연한 도심과 여염의 성대함이 중국보다 낫더라고 보고한 것이 보인다. 그 보고를 기록한 끝에 사관(史官)은 이렇게 개탄했다. "우리나라 제도는 번번이 중화를 본받고 있는데도 이제 정형(政刑)과 법령(法令)이 도리어 오랑캐만도 못하다"라고 말이다. 이런 뼈아픈 반성이 내실을 다지는 데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는 그로부터 약 130년 이후에 일본의 눈치를 보는 저자세로 드러난다. 우월감이 비굴함으로 역전된 것이다.

고종 13년 1876년 6월 1일 기사를 보면, 임금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金綺秀)를 접견하면서 일본의 기계 및 무기기술에 대해 물어보고는 그 원리를 물어보았는가 묻는다. 김기수가 물어본들 가르쳐 줄 것이 아니므로 묻지 않았다고 하자, 임금은 "매우 잘하였다. 만약 그 기술에 대해서 듣고 그 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이로운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한갓 체모만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전선(電線), 화륜(火輪)과 농기계, 이 세 가지 일을 가장 급선무로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하던가?" 묻고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배울 길이 있는가를 묻는다. 그 이후 양국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

조선과 일본의 500년간 외교 역사를 통해서도 아직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직시해야 할지 그 안목을 성숙시키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조선의 조정은 알고 있었다. 일본이 우리 측에 사신을 그토록 간절히 요청해놓고, 막상 사신이 가면 조선이 자발적으로 조공을 바치러 온 것처럼 굴며 자기 백성들에게 자국 정권의 위세를 세운다는 것을. 그러나 묵인했다. 또, 대마도가 신라의 영토에 속해 있었음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사는 것을 묵인했다. 잘 알면서 묵인했던 것이다. 그런 것으로 국력을 소모하거나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랬던 듯하다. 조선의 조정에서 내린 판단과 결론이 반드시 옳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을 알면서도 묵인할 것인지, 무엇을 반성해야 할 것인지는 스스로 짚고 있었다. 우리는 일본을 직시하기 위해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최근에 '한·일 관계 새 정립'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조선과 일본의 500년간 양국관계가 보여주는 진정한 교훈이 있다면, 타자를 이용해서 나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은 별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영토, 침략, 약탈, 경쟁 이런 부정적 방법으로는 자국의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존경이나 감탄을 자아내지 못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자국의 문화 문명을 잘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이웃과 소통하기 위한 근본적 준비이며, 그 준비 이후에 친해지는 방법은 상호 협조, 진정한 협력의 힘이다. 그것이 양국 교린(交隣)의 역사가 무게 있게 드리우는 진짜 교훈이 아닐까. 정권차원이나, 눈앞의 이익만이 아니라 역사의 눈으로 양국관계의 비전을 수립하기를 기대한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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