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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모든 생명의 가치는 같다 /정찬주

자연서 살다보면 산짐승 나무 한그루 벌레 한마리에도 무감해지지 않는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06 19:12:5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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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에 사는 정 씨가 산방 앞을 지나가며 투덜거린다. 밤중에 멧돼지가 밭을 휘저어놓아 올해 고구마 농사는 망쳤다는 것이다. 추수 전에는 논에도 내려와 여문 벼를 쓰러뜨렸다고 아랫마을 농부가 허탈해하는 소리도 들었던 바라 멧돼지의 출몰이 반갑지 않게 들린다. 멧돼지의 피해가 전국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듯하다. 텔레비전 뉴스로 보도될 정도이니 농부들은 물론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도심 골목까지 나타난 멧돼지는 영문도 모르고 쫓기는 범인 같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경찰은 멧돼지를 끝까지 추격하여 사살하고 마는데, 마치 선량한 시민들을 공공의 적으로부터 보호한 듯 의기양양하다. 언제부터 멧돼지가 도시민들에게 타도의 산짐승이 됐는지, 실제로 도시민들은 무슨 피해를 봤는지 궁금하다. 산중 농부들은 적의를 품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한 해의 고구마 농사를 망쳤는데도 "큰 것만 먹고 작은 것은 남겼그만요"하며 곧 잊어버린다. 울타리 밖의 주인이라 하여 산짐승의 기득권을 은근히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살다보면 엽기적으로 생긴 지네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소멸하므로 이것도 소멸한다는 연기의 도리가 시나브로 체화되기 때문이다. 하찮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생명의 가치가 똑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멧돼지 사냥이 허가됐다고 하는데, 내 산방 주변에는 '수렵금지구역'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도회지에서 살았다면 산짐승이나 미물의 생명에 대해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산중에 살다보니 방 안에 든 무당벌레 한 마리도 밖으로 내쫓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산책 나갔다가 누군가의 차에 치여 죽은 오소리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개울가에다 묻어준 적이 있다. 엉성하게 삽질을 하면서 내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환생하라고 빌어주었다. 산중에 들어와 살면서 그런 일이 많아졌다. 봄만 되면 흰 꽃가루를 날리어 재채기를 나게 하는 개밥나무를 벨 계획인데, 미안하여 지인에게 자문한 뒤 막걸리 두 되를 나무 밑동에 부어준 적도 있다. 그렇게라도 하면 개밥나무가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며칠 전에는 아찔한 사건도 있었다. 부산에서 월간지 '맑은 소리 맑은 나라'를 발행하는 김윤희 대표와 편집부 직원들이 내 산방을 찾아와서, 밖으로 나가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밤눈이 어두워 밤에는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운전했다. 가을의 농촌 길에서 만나는 짐승은 대부분 오소리나 너구리, 고라니다. 고라니는 늘 만나는 길목에서 거의 같은 시각에 보고, 오소리나 너구리는 돌발적으로 마주친다. 부산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너구리 한 쌍을 만났다. 나는 들에서 산으로 돌아가는 너구리는 발견하고는 녀석들이 통과하도록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마리가 되돌아서더니 들 쪽으로 가려고 했다. 나는 속도를 더 늦추며 너구리가 길을 통과하도록 도와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우스갯소리도 할 만큼 여유도 있었다. "길을 지나가다가 부부싸움을 했나 보다. 그러니까 한 마리는 산으로 가고, 또 한 마리는 들로 가는 거야." 운전을 잘하여 너구리가 피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는 아내와 함께 동화를 썼다. 너구리 한 쌍이 준 상상력을 발휘하며 즐겁게 운전하며 산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부산 식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가던 내 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자, 추돌사고를 일으킬 뻔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중추돌이 아니라 부산 식구들이 탄 승용차 뒤에서 오던 차와도 부딪칠 뻔했다며 내 운전 솜씨를 타박했다.

그래서 나는, 나와 친해진 농부들이 즐겨 쓰는 속담 같은 말을 두어 개 들려주고 그들을 위로했다. 힘 좀 쓰는 사람에게 모여드는 약삭빠른 이들을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붙어가듯 한다'하고, 신혼재미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나무칼로 귀를 베어가도 모른다'고 하고, 무엇을 아니라고 하는 손사래 치는 모습을 '쇠발 떨듯이 한다'고 소개하자 모두가 아! 그렇구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사전에 있는 속담이 아니라 농부들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싱싱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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