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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영원한 사랑을 직관하며 떠돌다 사라질 때까지 /장희창

소통없는 이웃은 그림자일 뿐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서 자신찾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18 20:57:5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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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어젯밤엔 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렸으니 오늘만큼은 차 한 잔 할래요, 아니면 막걸리 한 잔 할래요, 하고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다. 이해타산과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순백의 마음, 자연의 마음을 누리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아 참, 어젯밤 꿈결인가 잠결에 서울 사는 친구들이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다 보고 싶다며 전화를 했다. 날씨가 춥지만 그래서 더 일부러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노라고 약을 올렸다. 어두운 공간을 뚫고 밝은 목소리들이 전해져 왔다.

나 자신을 알기 어렵고, 우리의 이웃을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진정으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끝 모를 단절이다. 그 단절의 골짜기로 차가운 바람이 불면 우리는 갈래갈래 찢어져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소통 없이는 타자의 존재, 이웃의 존재, 이웃 나라의 존재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그림자일 뿐이다.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를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타자를 참아내는 능력이라도 길러야 한다." 세계문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세계시민주의자 괴테조차도 타자의 문제 앞에서는 이렇게 겸손할 수밖에 없다.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고,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리라. 괴테가 보기에 사랑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타자 속에서의 자기 확인이다. 두 연인 사이의 진정한 사랑의 본질은 상대의 존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는 데에 있다. 남과 여, 동방과 서방의 만남을 노래하고 있는 '서동(西東)시집'의 시구 전체는 이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의 운명은 고통이다. 타자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온통 비워야하므로 사랑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책 중에 가장 이상한 책은/ 사랑의 책이라./ 내 그 책 꼼꼼히 읽어보니/ 기쁨일랑 몇 쪽 안 되고,/ 책 전체가 고통이로다."

우리 시대 사랑의 화신 문규현 신부. 임수경과 남북의 분단선을 넘고, 4대 강 삽질에 맞서 전 국토를 오체투지로 쓰다듬고,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단식하다 쓰러진 그가 다시 회복하여 병상에서 빙그레 웃었다. 그저께 사이트를 검색하다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평화로운 미소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아귀다툼의 생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죽음을 넘나들었던 사람의 미소가 그처럼 평화롭다니. 괴테의 시구를 빌어 그 심경을 헤아려 본다. "뜨거운 열정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면/ 어떠한 한계도 우리를 가로막진 못하리라,/ 영원한 사랑을 직관하며/ 우리가 떠돌다 사라질 때까지."

'서동시집'에서 시인은 불꽃을 향하여 뛰어드는 나방의 형상을 빌려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지 말고 모든 대립을 과감하게 극복하는 더 높은 결합을 이루라고 말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두운 대지 위에서 우리 인생은 한낱 흐릿한 객(客)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이란 자신을 완전히 타자 속으로 몰입시킴이고, 자기희생이고, 궁극적인 사랑의 원리이다. 첫눈이 내렸으므로 누군가와 한 잔 해야겠다. '서동시집'에서 사랑과 술과 노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모두가 자기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취한 자는 흥얼거리면서 비틀비틀 걸어가고,/ 적당히 마신 자는 노래하며 즐거워한다." 조금 더 마시고 조금 덜 마신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첫눈 이야기를 하다 엉뚱하게 '서동시집'으로 이어졌다. 내친 김에 멋있다고 느꼈던 시구를 다시 한 번 인용하겠다. "사랑하는 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아 참, 밝혀둘 것이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이고 팔레스타인 출신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현존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이자 피아니스트이고 유대인 출신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서로 손을 맞잡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1999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젊은 음악도들을 참여시켜 만든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이다. 2005년 무장군인들이 공연장을 에워싼 채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라말라에서 열렸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장면은 지상에서의 폭력과 평화, 그 두 얼굴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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