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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파시즘 식별법 /곽차섭

중앙집중 권력구조, 밀실정치와 권언유착, 공정함 잃은 법치 등 커지는 파쇼적 징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29 20:21:3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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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던 말 중에 '파쇼'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대체로 권위주의적 독재 권력을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었다. 원래 이탈리아어로 '파쇼(fascio)'란 나뭇가지 같은 것의 '묶음'을 뜻하는데, 이것이 확대되어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를 뜻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그러한 '묶음'의 이미지를 공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파쇼가 반독재 정권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 것은 무솔리니에게서 비롯된 이른바 역사적 파시즘의 유산이다. 1919년 그에 의해 만들어진 '전투 파쇼'가 그 시작이었다. 무솔리니의 민족파시스트당(PNF)은 반공산주의, 반아메리카주의, 반자본주의 등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이러다 보니, 학자들 사이에 과연 역사적 파시즘이 어떤 것이었던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중세와 같은 계서제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파시즘이 강력한 권위주의를 그 본질로 하고 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반파쇼라고 했을 때 그것은 반독재와 거의 동의어였다. 파쇼 혹은 파시즘은 이제 역사적 용어로부터 권위주의적 독재를 가리키는 일반 용어로 변한 것이다.

파시즘에 내장된 권위주의는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권력 구조들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잠재적인 저항 세력을 억압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치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한 도구가 바로 정당과 대중 조직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국민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로 이끌어 간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파시즘 정권의 일반적 특징은 이렇다.

정당은 더 이상 민의의 반영이 아니며, 외형적인 서민 정책 아래서 국민은 점점 더 우중화된다. 겉으로는 법을 내세우지만 이미 그것은 정의에서 멀어지고 있다. 법이란 통상 갈등의 조정자일 뿐, 자동적으로 정의와 동치되지는 않으며, 진정한 법치주의에는 언제나 형평과 공정함의 가치가 내재되어야 한다는 점은 무시된다. 법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 선거는 공정치 않은 과정을 거쳐 통상 정권이 원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정당은 외형적으로 그것의 정당함을 광고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제 국회에서의 논의는 허망한 말장난으로 보인다. 권력의 향방을 눈치챈 관료들은 더 이상 국회의원들의 감독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민의의 대표라는 그들의 말은 힘없는 자들의 자위에 불과하다. 무소불위의 불도저식 권력 행사가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이름으로 부각된다.

사법부는 점점 더 독립성을 상실하고 정치적 판단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법리 논쟁은 사라지고, 소수의 극보수적 인사가 분위기를 장악한다. 방송과 신문은 정치 지도자의 언행을 최우선 뉴스로 삼기 시작한다. 언론은 권력자의 행적을 홍보하는 광고업체로 전락한다. 소통의 통로는 하나둘 사라지게 된다.

시민적 자유가 어느새 사라져 간다. 정부는 의미 있는 항의에 대해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저항의 목소리들을 잠재운다. 사회 조직과 기관의 구성원들이 권력자 편 사람들로 채워진다. 내부 저항 세력들은 다양한 사찰의 방법을 통해 약화시킨다. 혈연 지연 학연 권연 등 여러 사회화 경로를 이용하여 연대 세력을 규합한다. 필요하면 군대를 동원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이 '파쇼'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 발언이 자주 들린다. 여러 사람이 죽고 다친 용산 철거 사건의 방치, 쌍용자동차 파업 등에서 나타난 경찰력의 전례 없는 공격성, 반정권 인사의 배제와 비판적 시민 단체에 대한 압력, 국정감사에서 정부 관료들이 보인 안하무인 격 말투와 태도, 군 감찰 기관의 민간인 사찰 의혹, 심지어는 일반 시민들에 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소송 남발 등, 문민 정부 이후 보기 어려웠던 일들이 심심찮게, 그것도 하등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현 정국을 보는 눈은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관점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점 역시 기분 나쁜 징후이다. 소통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에 제시된 '학문적' 지표를 적용하여 작금의 한국이 과연 파시즘 정국인지 아닌지 자신의 시각을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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