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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가 기축년에 흘린 눈물 /정지창

우리 곁을 떠난 두 전직 대통령…'인간의 눈물' 가르친 희귀한 정치지도자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2-29 21:01:1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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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는 혼자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쑥스럽지 않았는데, '워낭소리'를 볼 때는 옆자리에 앉은 아내 몰래 눈물을 훔치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물론이고 다른 관객들도 연방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기야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미국 관객들도 눈물을 흘렸다지 않는가.

그런데 며칠 후, 부산에 사는 선배의 부음이 들려왔다. 장례식장에서, 문상 온 광주 출신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고인과 대학 동기로 영호남이라는 지역의 장벽을 넘어 생전에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해직기자와 해직교수로, 7,80년대의 험난한 세월을 함께 견딘 동병상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산 출신의 선배는 성격이 화끈하고 정이 많은 만큼 말이 빨라, 충청도 출신인 나는 그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경상도 사투리의 3분의 1가량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는 때가 많았다. 그는 어느 대학의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았다가 1980년에 해직되고 말았다. 불교학생회 제자 가운데 이른바 운동권 문제학생이 있었는지, 고등학교 교사 시절부터 문예반의 제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거리를 휩쓸며 정훈희의 '안개'를 열창하던 그의 대책 없는 낭만적 사해동포주의가 어떤 빌미를 제공했는지, 아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광주 출신의 선배는 대학 졸업 후 어느 신문사 기자로 들어갔다가, 70년대 중반의 언론자유 투쟁 과정에서 해직되었다. 그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힘겹게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1980년대 초에 서울의 어느 대학 교수가 되어, 해직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

70년대에는 부산 출신의 선배가 서울에 가서 광주 출신의 선배에게 주로 술을 샀고, 80년대에는 부산 선배가 상경하면 광주 선배가 술을 대접한 다음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관례였다. 70년대에 서울에 살던 나는 광주 선배가 속한 해직기자 모임에 가끔 후원금을 냈고, 80년대에 부산에 살던 나는 부산 선배와 자주 어울려 중앙동 일대의 술집을 기웃거렸다. .

부산에 문상을 다녀온 얼마 후, 나와 동갑인 노무현 대통령의 부음이 전해졌고, 나는 봉하마을을 두 번 찾았다. 한 번은 영결식 전에 대구의 친지들과 함께 한밤중에 문상을 갔고, 영결식 후에는 서울의 친지들을 안내해서 한낮에 부엉이 바위 근처까지 올라갔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많은 빚을 안고 사는 사람이 늘 그렇듯이,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고소해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구의 2·28 기념공원에서 추모예술제가 끝난 뒤 전을 펴고 공연을 마친 후배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리는 대신 노래를 불렀다. 사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통곡하던 김대중 대통령처럼 순도 높은 눈물을 쏟을 자신이 없었다.

1학기 강의가 끝나가는 6월 중순, 갑자기 아내가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실로 아내의 침대를 밀고 가면서, 나는 미안하다는 감정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눈물로 나타난다는 것을 봉하마을에 이어 다시 경험했다.

그리고 7월. 뜻밖에도 광주 선배의 부음이 날아왔다. 부산에 문상 왔을 때도 일이 급하다면서, 대기시켜 놓은 택시를 되짚어 타고 공항으로 직행하더니, 결국 과로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병상을 지키느라 서울까지 문상을 가지 못하고 멀리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8월 들어 김대중 대통령의 부음을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기축년에 나에게 할당된 눈물은 3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이미 바닥이 나 버렸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마실 수 있는 술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가설이 있는데, 나는 일생 동안 흘릴 수 있는 눈물의 총량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축년에 내 곁을 떠난 두 선배처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도 일생 동안 쏟은 눈물의 총량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가르쳐 '악어의 눈물'이 아닌 '인간의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 희귀한 정치 지도자였다.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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