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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다 /장희창

자기 발로 걷는 것이 자율·자립의 삶

남의 생각으로 살면 경쟁과 전쟁은 필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06 20:09:43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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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별일 없으면 걸어서 출근한다. 전철을 타고 동의대역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가야 돌산 자락이다. 삼정그린코아아파트를 지나고 여여정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면 가파른 산길. 그 길을 20여분 오르면 돌산 정상이다. 거기 올라서면 왼편으로 영도 앞바다가 펼쳐지고 안창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 엄광산 자락에 펼쳐진 동의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마에 땀방울을 매단 채 다시 숲길을 걷는다. 안국사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난 아름다운 오솔길을 걷다 보면 어젯밤 술기운은 온데간데없다.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닳고 닳아 정겨운 나무계단, 한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른빛으로 허공을 향해, 아무것도 아닌 나를 향해 수많은 손을 흔드는 담쟁이덩굴. 반갑다. 머리는 맑고 가슴은 시원하다. 이 시대에 행복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긴 어렵지만 하루 중 이 시간만은 행복하다.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산으로 강변으로 바다로 걷자. 언제나 깊은 눈길로 자연은 우리를 맞는다. 자동차는 무조건 버린다. 내 몸 하나 편하게 나르기 위해 몸무게의 스무 배나 되는 쇳덩이를 끌고 다닌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자기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착취해야 하는 것, 그것이 자동차 문명의 본성이다. 비좁은 운전석에 앉아 앞차의 꽁무니만 응시하며 달리고 또 달리는 운전자들이 안쓰럽다. 그러나 흙길을 걸으면 우리가 아스팔트에서 아스팔트로 내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새삼 실감한다. 존재망각의 어둠이 걷힌다.

자기 발로 걷고 자기 생각으로 살며 자기 속의 자연을 되살리는 것, 그것은 곧 자율과 자립의 삶이다. 자동차로 달리고 남의 생각으로 살면, 그것은 타율의 삶이고 존재망각의 삶이다. 자율의 삶은 느림과 공존과 연대와 평화의 삶이다. 타율의 삶은 속도와 경쟁과 배제와 전쟁의 삶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석유 이권을 둘러싼 음모의 결과였다는 것은 이제 역사의 정론이다. 쉽게 말해 자동차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그렇듯이 자동차 문명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부른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며 인도와 인도인의 자립을 주창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홀로 살며 '자본'이 아닌 '삶'의 경제학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긴 것은 자율과 타율, 조화와 지배, 평화와 전쟁이라는 갈림길에 놓인 근대문명의 불길한 운명을 예감한 때문이었다.

서구 계몽주의 정신이 시민권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계몽의 주체였던 시민의 이성이 승리에 자만하여 자기극복을 못하고 도구적 이성으로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 서구 근대문명의 비극이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한다. "방황하고 있는 자연을 사냥개를 풀어서 잡아 봉사하게 만들고 노예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화석연료를 주종으로 하는 에너지 환경이 총체적인 빈사상태에 이르게 된 것도 서구 근대문명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결과이다.

착한 시민을 억압하고, 뭇 생명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4대 강을 난도질하는 이 시대 권력의 둔감한 감성도 그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분명하다. 막개발의 위험성은 간과한 채 이익과 편리함만을 좇는 일부 시민들의 무지함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이 늘었다고 좋아하면서, 막상 도로가 막힌다고 짜증을 내는 시민들의 의식분열은 두렵다. 그 거대한 분열의 아가리 속으로 민주주의도 금수강산도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이익과 편리함이라는 악마를 떨쳐버리기 위해 나는 걷는다. 이 시대 권력동물들의 화려한 액션 때문에 얻은 약간의 고혈압을 치유하기 위해 걷는다. 걷고 또 걸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국민작가 루쉰은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 깨어 있는 시민들이라면 희망과 절망, 꿈과 현실을 하나로 껴안으면서 묵묵히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절망은 없다. 갈 수 있는 만큼 한 걸음 더 가야 하고, 그래서 나는 걷는다.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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