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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여론이라는 유령 /오창호

계속해서 변화하는 여론에 기대기보다 합당한 절차 통해 세종시 해법 마련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17 20:39:3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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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초 정부가 행정부처 이전을 전면 백지화하고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 건설을 골자로 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이후 정국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수정안이 발표되자마자 이에 즉각 반발하면서 원안 사수를 결의하고 있고, 집권 여당 내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당내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시민단체들도 이에 보조를 맞추어 찬성의사를 혹은 반대의사를 집단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이 요즘 매우 가슴에 와 닿는다.

세종시 원안을 사수하겠다는 측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도권의 집중을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근거도 납득할만하고 더구나 세종시법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야 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역사적인 사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하는 측의 입장도 이해할만하다. 행정부처의 분산은 심각한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올 것이라든가, 원안대로 세종시를 추진할 경우 도시의 자족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여 엄청난 정책적 실패로 기록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세종시 문제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한쪽으로 압도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마 사안의 이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어느 일방도 압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기점으로 해서 양측은 문제의 열쇠는 민의, 즉 여론에 있다고 판단하고 민심을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측은 수정안의 구체적 내용과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고, 원안 사수를 고집하는 측은 원안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혁신도시 지정지를 돌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원안 사수 측은 수정안 추진 측이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여론조작에 나섰다고 비난하고, 수정안 추진 측은 원안 사수 측의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장외투쟁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주인인 정치체제이고, 따라서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국민의 의견 즉 여론에 따른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위정자는 언제나 여론의 향배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여론에서 드러난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여론은 잠시도 머무는 법이 없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이 사태를 어렵게 만든다. 여론은 대지처럼 견고한 기반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처럼 출렁이는 위태로운 기반이다. 한때 한없이 평화롭게 보이던 바다가 일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용솟음친다. 더구나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긴밀해지면서 여론의 구조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여론이 정치를 이끌어 가는지 아니면 정치가 여론을 이끌어 가는지가 불분명해졌다. 정치공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어느 것이 믿을 수 있는 정보이고 어느 것이 믿을 수 없는 정보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늘 바뀌고 내일 바뀌는 여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깨비 같은 것인가! 그리고 그런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여론에 기대어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민주사회에서 여론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애초에 세종시 문제가 이처럼 꼬이게 된 것은 그것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기보다는 입법과정에서의 합당하고 정당한 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했다는 데 있다. 세종시 문제는 그보다 훨씬 큰 수도이전 문제가 벽에 부딪히면서 그것의 변형된 형태로 탄생하였다. 세종시법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발의되지 못했으며 당연히 입법과정도 파행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다시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국회에서의 합당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여론의 힘으로 추진된다면, 다음 정권에서 다시 재수정안이 제안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것이 바로 후진적인 민주주의이다. 국회 내에서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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