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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로데즈의 추억 /박형섭

개인의 삶은 공간 속에 기록돼…예술가 집·고향은 박물관이 되는 것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22 20:16:4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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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의 고속도로는 짙은 안개에 쌓여 있었다. 프랑스 남부 미디 피레네 지방은 해발 육백 미터가 넘는 중앙 산악지대로 유명하다. 2년 전 1월, 나는 아베롱 계곡과 오테른 계곡을 지나 로데즈라는 도시로 향했다. 앙토냉 아르토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는 미치광이로 통한다. 1990년대 초 한국 연극계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킨 이윤택의 '오구, 죽음의 형식'은 바로 아르토의 잔혹극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아르토는 서구 인식론을 전복한 혁명가인 동시에 새로운 미의식을 개척한 아방가르드 예술가였고, 비범한 자의 존재론적 병이라 할 수 있는 광기의 희생자였다.

로데즈는 그가 말년에 감금당하여 치료를 받던 정신병원이 있는 곳. 로데즈 가는 길은 아르토의 신산스러웠던 삶만큼 굴곡이 심했다. 여행은 낯선 곳의 이국적 삶을 체험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아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롭게 인식하는 기쁨이 더욱 크다. 원천적으로 해독의 어려움 때문에 문학적 지적 고전이 되는 작품이 있는데, 아르토의 경우가 그에 해당된다. 연구자들은 잘 읽히지 않는 작품을 해독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작가의 족적을 추적하고 거기에서 단서를 찾는 일이다. 나의 로데즈행(行)은 아르토의 행적을 추적하며, 그의 사유의 단초를 제공해준 병적 삶의 체취를 느껴보는 데 의미가 있었다.

로데즈에 도착해 곧바로 우체국을 찾아갔다. 52년의 생애 중에 아르토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것은 편지 쓰기였다. 세상은 그를 유폐시켰지만, 그는 세상을 향해 소통을 꿈꾸었다. 그는 로데즈 정신병원 시절 끊임없이 글과 데생으로 자아를 표출했다. 고함을 지르고 통제 불능의 행동으로 정신병원에 유폐된 시인,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반복하고, 글 쓴 종이를 불로 지지고 그 귀에 형상을 남기는 시인, 그는 일상의 우리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였다. 다수가 아닌 혼자만의 열광은 광기로 간주된다. 어쩌면, 아르토는 자발적으로 광기를 택한 순교자일지도 몰랐다. 그는 안락한 세상을 등진 채 사회질서에 반항하다 로데즈라는 창조적 유배지로 향한 셈이었다.

로데즈는 중세 때 형성된 작은 도시로 과거와 현재가 완벽하게 공존하는 전원도시였다. 아르토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노트르담 사원 주변을 홀로 산책하곤 했다. 자신은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며 오히려 세상이 천재들을 죽인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틈나는 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과 건강상태 혹은 사유의 결과물을 노트에 적었다. 그것은 오늘날 '로데즈의 노트'로 남아 있다.

로데즈 지방 특유의 암적색 벽돌로 지어진 우체국은 아르토가 절박한 마음으로 편지를 품고 들어가던 당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로데즈 우체국 앞에서 추위를 잊은 채 서 있었다. 아르토의 영혼은 여전히 로데즈 시절의 산책로를 배회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미친 게 아니라, 천재였을 뿐이었다! 그의 직관은 자연발생적이며, 동시대인과 다른 그 무엇이었다. 그의 심오한 사유체계는 언제나 자신을 견자(見子)로 이끌었다. 견자는 저 너머를 보는 자, 사물의 이면을 응시하는 자, 미래를 미리 사는 자이다.

로데즈 우체국 옆 좁은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데즈 시 당국은 아르토가 자주 들렀던 우체국, 공원, 병원에 이르는 작은 골목길, 레스토랑과 광장을 '아르토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안내지도에 표시해 놓고 있었다. 지금도 고풍스러운 이 소도시를 찾는 이방인의 상당수가 '아르토 산책로'를 걸으며, 그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의 삶은 자동적으로 우주 공간 속에 기록된다. 허공에 외치는 고함이나 절규, 호흡하는 행위조차 그대로 기호가 된다. 그것들은 상형문자로 씌어진 서사시이고, 개인의 역사이다. 그 모든 것은 개인의 정신적 물적 증거물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집은 박물관이 되며, 고향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추억의 시간여행을 감행하는 아르토 연구자에게 로데즈는 아직도 미망(迷妄)이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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