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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터넷 언어 대신 민족생활어 사용을 /곽차섭

민족생활어 사전…옛 물건·풍습 망라

인터넷 '듣보잡'보단 '오사리잡놈'이 나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07 21:31:0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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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이들은 어릴 때 아빠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어릴 때 들었던 옛날 이야기에 이리저리 살을 붙여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빈약한 내 얘깃주머니는 곧 동이 나고 말았다.

고민하다가 서점에서 눈에 띈 것이 바로 이훈종 선생이 쓴 '깨가 쏟아지는' 옛 얘기책들이었다. 그때가 1990년대 중반쯤이었다. 한동안 이 이야기 책들을 서가 뒤에 감춰두고는 적당히 각색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어 큰 환영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결국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애가 서가에서 문제의 책들을 찾아냈고, 무한정한 이야깃주머니의 비밀도 아쉽게 밝혀지고 말았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민속 용어에 관한 책을 찾다가 우연히 이분이 쓴 '민족생활어사전'이란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한 권짜리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좀 놀랍다. 사람의 몸에서 시작하여 옷차림, 갖가지 모자, 바느질 도구, 노리개, 전통 문양, 집, 창살, 세간살이, 베짜기, 농기구, 갖가지 연장, 공예, 등불, 심지어는 숙박시설, 성곽, 무기에다 묘제 및 종교·의식까지도 나와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민속백과사전이 아니라 저자가 어릴 적부터 듣고 보아온 수많은 물건이며, 풍습이며, 어휘들이 그 속에 녹아 있다. 게다가 손수 그림까지 그려 놓았다. 지금부터 이훈종 민속생활어 퀴즈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과연 몇 점이나 올릴 수 있는지 각자 시험해 보기 바란다.

책의 맨 첫 항목 해설에 나오는 표현부터 시험해 보자. '메뚜기이마'가 무언지 아시는 분? 첫 표제어가 '천정·이마'인데 해설은 이렇게 나와 있다. '이마가 훤하게 트이면 소견이 넓고 출세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말한다. 이마 전체가 톡 튀어 나왔으면 되빡이마, 뒤로 버스러졌으면 메뚜기이마 등의 별명을 붙여서 부른다'. 이런 표현이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나 싶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온라인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 말을 검색했으나 나오지 않았다. 이 사전은 '이마'를 '얼굴의 눈썹 위로부터 머리털이 난 아래까지의 부분'이라고 해설해 놓고 있을 뿐이다. 둘을 비교해 보라. 그 차이가 바로 이훈종 식 '민족생활어' 해설의 묘미이다.

사람의 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마늘모눈, 도끼눈, 나비눈, 고리눈 등등. 필자는 솔직히 도끼눈은 들어 봤어도 다른 눈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도끼눈'은 어떤 것인가? '도끼눈을 하고 째려본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좀 살벌한 느낌을 주니 그 '도끼'는 필시 장작 패는 도끼이리라. 아니었다. 이훈종은 이 때의 '도끼'는 '토끼'의 옛말이라,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뜬다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딜 감히 눈 똥그랗게 뜨고 쳐다 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가. 앞으로 도끼눈을 할 때는 '째려보지' 말고 눈을 '똥그랗게' 뜰 일이다. 나비눈도 마찬가지다. 나비처럼 하늘거리는 미녀의 눈웃음이 아니라, '못마땅해서 사르르 굴려 못 본 체하는 눈짓'이란다. 이 '나비'는 노랑나비가 아니라 고양이로, 곧 고양이 눈을 뜻한다. 마늘모눈은 '눈의 위 까풀이 이상하게 모가 져서 눈 전체가 삼각형으로 보이는 것'이고, 고리눈은 '눈을 부릅뜨면 흰자위가 동자를 둘러서 드러나는 특수한 눈'이라는데, 삼국지의 장비가 바로 이 '특수한' 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당신의 눈은 어떤 눈인가?

민속생활어의 달인 이훈종 선생의 얘기책 중 특히 기억나는 것이 '오사리잡놈들'이다. 이는 '온갖 못된 짓을 거침없이 하는 잡놈들'이란 말이다. 여기서 '오사리'란 오월 사리란 뜻인데, 질 좋은 새우만 잡히는 유월 사리와는 달리 이때는 게딱지, 오징어, 곰장어 등 별의별 잡고기가 섞여 올라오니 새우만 필요한 어부들에겐 아주 귀찮은 존재들이라 이런 표현이 생겼다고 한다. 한마디로 쓰레기 잡탕이라는 말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방송에서 시끄럽게 구는 한 인사를 가리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뜻의 인터넷 신조어)이라 한 어떤 논객에게 명예훼손죄가 적용되었던데, 그런 경우에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런 말보다는 점잖게 '오사리잡놈 같으니!'라고 일갈했더라면 어땠을까? 민족생활어도 살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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