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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마녀사냥을 부추긴 한 권의 책 /이택광

이데올로기가 책이라는 매체통해 대중의 호응 얻어 폭발적 영향력 발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10 20:54:15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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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13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일어난 특정한 유럽의 사건이지만, 요즘은 유사한 의미에서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행위를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처음에 가톨릭교회를 통해 주도되었던 이 사건이 15세기에 이르면 자발적인 '운동'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여기에 뜻밖의 계기가 숨어 있다. '마녀의 해머'라는 책이 출간된 것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 말고도 마녀를 규정하고 구체적인 마녀사냥의 방법론을 기술한 책은 이미 있었다. 그러나 '마녀의 해머'라는 책은 결정적으로 달랐다. 바로 인쇄술을 이용해서 발간한 책이다. '마녀의 해머'는 인쇄술이라는 '최신의 테크놀로지' 덕분에 보기 드물게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당연히 인쇄술이 발달했으니, 책을 판매하는 서점도 갖춰졌을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기로 성서를 찍어냈을 때가 대략 1439년 무렵이었다. 이때로부터 약 50년 뒤에 '마녀의 해머'가 세상에 나온다. '마녀의 해머'가 출간된 시기는 인쇄술이 독일과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때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책의 수요 증가는 개인 인쇄업을 기업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찍는 곳과 파는 곳이 분리되었고, 책을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들도 생겨났다. 이른바 '독서'가 보편화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녀의 해머'도 이런 분위기에서 20쇄를 찍을 수 있었다. .

한마디로 '마녀의 해머'는 당시 위기에 빠진 중세적 세계관과 인식체계를 대체하면서 마법과 마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대중적으로 유포했던 중요한 '첨단매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말하자면 첨단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에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마녀사냥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 단순하게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행해진 폭력이 아니라는 진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모종의 공모를 가능하게 만든 요소가 여기에 있다. 서점을 통해 책이 판매되고 '마녀의 해머'라는 책을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면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만든 이데올로기가 공통적으로 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이 담당하는 역할을 당시에 책이 담당한 것이다. 인터넷이 현대판 마녀사냥의 온상이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책이 발달하던 초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마녀사냥이 창궐한 시기는 중세의 유토피아주의가 몰락하고 도시와 화폐경제라는 전혀 새로운 가치 공간과 체계가 등장할 때였다. 마녀사냥은 공동체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녀들을 제거하면 공동체는 다시 과거처럼 평온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에 교회는 마녀를 인간과 다른 별개의 종류로 생각했지만, '마녀의 해머'가 출간된 뒤에 구체적으로 '여성들'을 지목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여성은 선천적으로 유혹에 약하고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이 개입한다.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원시적인 수준이지만 과학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녀사냥에 근거를 마련해준 것은 초기 과학혁명의 결과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처음에 인간과 다른 종류로 마녀를 규정하다가 구체적인 여성의 열등성을 중심으로 마녀사냥의 담론이 이동한 까닭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문화적 상징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이 약했던 가톨릭교회가 마녀사냥을 주도할 수 있겠는가? 가톨릭교회가 강력했을 때 오히려 마녀들에 대해 관대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인 대중의 호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놀랍게도 마녀사냥이 한창 벌어졌을 때,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행동한다는 진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데올로기와 매체가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 바로 마녀사냥인 셈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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