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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잉여의 시대, 봄빛을 기다리다 /김수우

끊임없는 생산으로 소비가 덕목돼 떨림있는 감동 잊어가는 우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19 20:03:0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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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엔 잘 정련된 질서가 담겨 있다. 근대 미학의 정서에 기반한 정성스러운 꽃꽂이는 늘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 그건 감탄이다. 감동과는 다르다. 감탄이 화려함과 경이를 품고 있다면 감동은 소박한 울림과 저림을 갖고 있다. 불필요하다 싶은 잔가지를 쳐버린 문명을 우리는 예술로 소비하지만, 그건 확실히 납작한 풀꽃이 주는 떨림과는 다르다. 바로 생명력의 차이가 아닐까.

근대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계속 질서화한다. 규범화되지 않는 것들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러나 존재란 결코 질서화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자연이 그렇듯 직선으로 규격화되지 않는 것이 삶이다. 시공을 넘어 무수한 비의를 품은 생명은 규정되지 않아도 충분히 조화롭고 아름답다. 도심의 골목도 그렇다. 꾸불꾸불 꺾이는 구비마다 일상이 푸릇푸릇 여울진다. 소소하고 남루한 것들 속에 함부로 지워버릴 수 없는 존엄이 있다. 인간적인 그 무엇이 당당한 더께를 이루고 있음이리라.

잉여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남는다. 넘치다 못해 그냥 버려져 모퉁이마다 쌓인다. 여유도 아니다. 기술문명이 만들어낸 소유와 싫증의 부산물이다. 끊임없는 생산 때문에 덕목이 되어버린 소비가 물신의 신화를 빚는다. 과유불급이라고, 옛 선인들은 넘치느니 모자람이 낫다는 지혜를 이미 일러주지 않았던가. 마치 쓰레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 새 것들은 이내 싫증난다. 끝없이 새로운 질서화를 꿈꾸며 싫증난 것들은 풍경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손창섭의 단편 '잉여인간'은 불구적 현실에 놓인 소외된 군상의 내면을 담고 있다. 그땐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경제적·정신적인 결핍이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소외와 잉여이다. 멀쩡한데도 도무지 쓰일 데도 놓아둘 데도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쓰레기더미의 영원한 존속. 함부로 생산하면서 추구해온 경제발전이라는 백일몽의 잔해들이 공포스럽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남는다. 잉여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꿈도 쓰레기가 된다. 실업 문제, 노숙 문제, 용산 참사 등이 그 현실의 반영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사라지는 '유동적 현대'에서 인간이 생산한 모든 것이 곧바로 쓰레기가 될 뿐 아니라 인간도 쓰레기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저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묻는다. 처음에는 매력적이던 것들이 쓰레기가 되는 까닭을. 물건들이 추하기 때문에 버려지는가. 버려지기 때문에 추한 것인가. 물건들은 영혼이 없는가.

기술문명으로 손이 퇴화된 현대인은 양심도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명이 주는 감탄은 늘어가지만 감동은 점점 퇴화해간다. 감동이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에서 이는 파문이다. 떨림과 울림이 있는 사유의 근본적인 전환은 정말 어려운 걸까. 어떤 철학적 종교적 욕구보다도 존재에 감동하는 일이 우선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소비대열에 끼어 있는 나 자신 또한 이런 반성이 어떤 전환을 발휘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우리는 질서화와 개발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굽이진 골목을 뜯어내어 도로화하고, 높은 건물을 더 높이 올리려는 욕망의 강박증을 앓는다. 하나 아무리 새롭고 편리한 문명에 감탄하다가도 인근 야산에라도 가면 마음이 그저 맑아지지 않는가. 변두리 좁은 모퉁이라도 소박한 신선함이 있다. 우리는 나뭇가지에 걸린 거미줄에도 감동하고, 꽃술 적신 이슬에도 감동한다. 거기선 아무 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구불텅 구불텅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제자리이며, 그 자체로 존재이유를 확보하고 있다.

겨우내 비척비척 말라가는 화분에 매일 물을 준다. 도무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은 물건들도 다시 잘 챙겨둔다. 그리고 봄빛을 기다린다. 모든 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이 잉여의 시대, 어디에 감동할 것인가. 잘 다듬어진 꽃꽂이에 감탄하기보다 시멘트 틈바구니의 풀빛에 떨리는 마음이 곧 구원이 아닐까. 결코 질서화되지 않는 것들이 흔들, 우리 본성을 일깨우듯 기웃거린다. 질경이 같은 저 눈짓들.

시인·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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