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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은 우리의 운명이다 /전진성

친미·반미 태도는 허위의식 불과

제도·기술·문화 전 세계에 침투시킨 美 영향력 직시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3-01 20:45:3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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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계 올림픽에서처럼 일본도 아닌 미국이 우리나라의 경쟁 상대 내지는 심지어 몇몇 분야에서는 한 수 아래로 간주되는 것은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다. 여전히 TV 토론회를 보면 "미국은 … "을 남발하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이젠 그런 논법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는 힘들어졌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속속들이 알려져 있고 항간에서 LA로 '이사'간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 나올 정도로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와 있다.

소속 대학으로부터 연구년을 얻어 미국 대학을 방문 중인 필자는 이곳에서 예상 밖의 것들보다는 오히려 익숙하고 친근한 것이 많음에 놀란다. 언어 장벽만 빼면 한국이 미국을 본뜬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한국을 본뜬 것인지, 일상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엇비슷하다. 선진국에 왔으니 뭐든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이제 드물며 도리어 이곳에 의외로 엉성한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그동안 많이 현실에 가까워졌지만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을 떨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무조건적인 친미나 반미는 그 시의성이 이제 와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적어도 역사학 전공인 필자에게는 자민족의 배타적 이익보다 타민족에 대한 고마움을 앞세우는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 우익' 세력의 이념이 과연 좌우 어느 쪽인지 분간이 안 된다. 물론 필자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 소재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에 새겨진 대로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와 전혀 만난 적 없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미 장병들의 희생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정부가 한국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해 자국민의 희생을 감수했다는 역사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지구 상 어느 정부가 국익을 도외시하고 순수한 대의만으로 파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이끄는 미 연방정부가 흑인 노예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60만 명이 훨씬 넘는 장병의 희생을 감수했다는 역사인식과 유사한데, 참고로 미 정부는 전쟁 전과 후는 물론 심지어 전쟁 중에도 또 다른 유색인인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이 같은 인식에 버금가게 편향된 것이 우리나라의 문제를 쉽사리 미국 탓으로 돌리고 민족의 자주성만 얻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사실 지난 세기에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특히 1920~30년대 독일과 일본, 그리고 1950~60년대 소련에서 미국을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퇴폐주의와 동일시하며 그 반대상을 자국의 이상적 모델로 삼았던 경우가 대표적인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을 고마운 나라, 아니면 적으로 삼는 태도는 둘 다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친미나 반미 대신 영리하게 '실용' 외교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는 외교 정책 담당자들이 고민할 사안이다. 더 근본적인 사안이 있다. 미국은 분명 토크빌의 고전적 저작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묘사되었던 자유와 평등이 균형을 이룬 나라와는 거리가 멀며, 갖가지 인종이 섞여 새로움을 창출하는 '용광로'는 더더욱 아니다. 30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에도 이미 골자가 다 빠진 개혁안마저 의회 통과가 불투명한 그런 나라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 이상이기에 문제다. 흔히들 미국 학계가 곧 세계학회라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의 교육과 학문이 반드시 세계 최고여서가 아니라 미국 소재의 대학에서 세계 인재의 유통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현재의 경제위기로 미국의 국력이 쇠할 수도 있겠으나 세계 자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미국 금융권은 계속 작동할 것이다. 또한 미국식 제도, 기술, 문화와 취향이 좋든 싫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점 또한 현실이다. 미국을 단지 한 나라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은 우리에게는, 아니 지구 상의 모든 나라에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운명을 단순히 긍정, 혹은 부정하기보다는 주어진 운명과 효과적으로 대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어교육 강화라는 단세포적 발상 말고 말이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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