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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으면 /이명현

문제를 크게 키우고 더 심각하게 만드는 끝없는 거짓말 일상화돼 안타까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05 20:55:4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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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군것질도 하고 탁구장에 가서 탁구도 쳤다. 모두가 초보라서 라켓 쥐는 법도 제각각이고 한두 번 만에 공은 바닥에 떨어지거나 멀리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하루는 얼굴이 익은 탁구장 아저씨가 레슨비를 할인해 주겠으니 제대로 탁구를 배워보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우리들 중 몇몇이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더 이상 같이 놀 수 없었다. 탁구장 아저씨에게 탁구를 치는 패와 여전히 엉성하게 라켓을 쥐고 공을 허공으로 날리며 노는 패로 나뉘게 되었다. 나는 허공파였는데 탁구를 정식으로 배우는 친구들이 부러워졌다. 그런데 부모님께 탁구를 배우려고 하니 레슨비를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하나 생각해 냈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드리기로 한 것이다. 마당에 나가서 양복을 털면서 주머니 속에서 돈을 슬쩍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지만 한 번 해보고 나자 제법 기술도 붙었다. 그렇게 빼돌린 돈으로 나도 어엿하게 탁구를 배우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내가 돈을 훔친 사실을 눈치채셨다. 다그치는 어머니 앞에서 돈을 훔친 사실을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뭐가 부족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물으셨다. 얼떨결에 과자가 사먹고 싶어서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종아리를 때리셨고 그 후로 용돈이 두 배로 올랐다. 나는 끝끝내 탁구 레슨비를 내기 위해서 돈을 훔쳤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혼나고 있던 그 순간에도 레슨비 찾아오라고 하면 어떡하나 탁구장 아저씨한테 혼날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사실대로 고백할 수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속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사용해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네 명씩 한 조가 되어서 움직였는데, 그때만 해도 훈련장 근처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서 훈련병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일이 많았다. 우리도 한 아주머니를 따라가서 저녁도 배부르게 먹고 집에 전화도 했다. 산중턱에 차려 놓았던 캠프로 몰래 돌아온다는 것이 그만 훈육관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그들도 이런 관행에 익숙해져 있었고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갈 판이었는데 훈육관 중 한 명이 잘 놀다 왔으니 뇌물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리들 중 한 명이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길을 잃었었다며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몇 순 돌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훈육관들의 다그침은 얼차려로 이어졌다. 우리들은 돌아가면서 거짓말을 지어냈다.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느낌이 더러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도 진척이 없자 우리들은 또 다른 얼차려와 벌점과 함께 풀려났다. 이 사건 이후 우리들은 한동안 서먹서먹해졌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다행히 제대 후 사석에서 훈육관들과 당시 상황을 정리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핏대를 세우며 거짓말을 제작해 내던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방어 본능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사실 문제는 거짓말을 하고 난 후에 더 크게 발생한다. 거듭되는 거짓말을 통해서 자기합리화의 길로 들어서고 결국에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도 상실해 버리는 일상적 습관적 거짓말의 단계에 들어선다고 한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나 봉은사 사건은 명백하게 한쪽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어쩌면 자기방어에서 시작된 거짓말이 자기합리화 단계를 거쳐서 일상화되어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진행형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늑대가 양의 탈을 쓸 뿐만 아니라 진짜 양이 된 것처럼 착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짓말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상식을 회복하고 건강한 합리성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길이 보이지 않으니 이 모든 사건들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남는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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