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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좌파와 우파의 경쟁사회 /이택광

중산층 몰락해 출발 조건 큰 차

초식남·건어물녀…경쟁 체제 이탈한 20대 무기력 상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07 20:38:1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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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맹렬한 경쟁의 세계로 보는 건 일반화된 '좌파적 시선'인 것처럼 보인다. 역으로 우파는 경쟁을 '자기 것'으로 보고 이걸 옹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번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보자. 한국의 우파가 경쟁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우생학적 담론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화하면서, 특히 박정희 근대화시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우생학 담론이 자기규율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하게 우생학 담론이 경쟁을 조장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일종의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서 경쟁을 강화하는 것을 보증해준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경쟁주의=과학적으로 증명된 가설'이라는 대중적 믿음을 유포하기 위해 우생학적 논리가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부터 이런 생각들이 뿌리내리기 시작했으니 연원은 꽤 오래되었다. 한국이 약소국이라서 강대국에서 주권을 빼앗겼다는 논리는 우생학적 논리가 민족주의와 결합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우생학적 담론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지나친 경쟁의 원인이라기보다, 이 증상을 유지하기 위한 핑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경쟁을 통해 지극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 운동도 경쟁을 하면 짜릿하지 않은가? 페어플레이라는 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즐기자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페어플레이보다 막장 투혼에서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얻기 마련이다. 한국 축구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는 경쟁이라는 증상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다. 경쟁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이런 경쟁의 속성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은 비슷한 능력일 때 가능하다. 아예 능력 차가 너무 많이 나면 경쟁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경쟁은 일정하게 평등주의적 요소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좌파가 아니라 '합리적' 좌파라면 이런 경쟁의 공정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가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옛이야기이고, 나는 앞으로 실질적으로 경쟁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경쟁이라는 것이 '비슷한 처지'를 보장 받아야 가능한 것이라면, 동등한 능력이나 처지가 보장되지 않으면 경쟁을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급속하게 진행 중인 중간계급(의식)의 몰락은 경쟁 자체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아예 경쟁 없는 '신분사회'로 가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경쟁에 미쳐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건 그만큼 중간계급(의식)이 광범위했고, 너도나도 '즐길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이 단계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분배와 관련한 이슈도 경쟁에서 더 이상 쾌락을 얻지 못할 때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분배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적자생존과 반대 항에 놓인 것이다. 분배는 적자생존의 경쟁이라기보다 자기애의 세계에서 가능한 것이고, 이건 되는 놈만 살게 하자는 강자의 논리라기보다, 각자 특이성에 기반을 둔 선의의 경쟁을 전제하는 것이다.

최근 표면화하고 있는 '초식남'이나 '건어물녀'는 더 이상 적자생존식 경쟁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자기애적 주체'를 보여준다. 무기력해 보이는 요즘 20대들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경쟁'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 경쟁이 고통스러울 때, 이런 주체는 그것을 강요하는 체제를 이탈해버릴 수 있다. 경쟁은 선악의 판단을 넘어서 있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경쟁이 나쁘다고 말하거나 좋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진술이다. 좌파가 경쟁이 나쁘다고 말한다면 백전백패일 것이고, 우파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좋다고 말해봤자 자기들에게 이로울 게 없다. 그럼 삼성의 특혜는 뭐냐 이런 공격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에 대한 좌파, 우파의 입장은 시차적 관점일 뿐인 것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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