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시론] 지극한 슬픔은 진실을 깨닫게 하나니 /정지창

참기 힘든 고통에도 속세는 진행형

삶에 대한 직시가 아픔을 극복하게 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18 20:44:07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천안함 해군 병사들의 유해가 수습되면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죄스러워" 아무것도 못 하고 망연자실 허공만 쳐다보고, 아버지는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울음을 삼킨다. 이들의 슬픔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군대에 보낸 사랑하는 육친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정말 슬퍼봤소?" 1974년 2월 22일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 예인선(YTL)이 뒤집히는 사고로 유일한 혈육인 동생을 잃은 형은 이렇게 물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막 전역한 스물다섯의 청년인 그는 이미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재혼한 아버지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터였다. 스무 살짜리 동생은 해군에 입대한 다음 미처 수영을 배우기도 전에 이순신 장군을 모신 통영의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사고는 전투가 아닌 해난사고로 159명의 해군과 해경이 사망한 세계해군사에 기록될 만큼 엄청난 참사였다. 유족들은 진해에 마련된 빈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시신이 화장 처리되어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올 때까지 몇 날 며칠을 울부짖으며 기다려야 했다. 영현부대의 화장용 트레일러를 총동원했는데도 워낙 희생자가 많다보니 화장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슬픔으로 먹는 것, 자는 것을 잊어버렸던 유족들도 결국 살아있는 인간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허기를 못 이겨 밥을 찾고 지친 끝에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밥이 설었네, 반찬이 시원찮네,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자기 육친은 화력이 좋은 몇 번 트레일러로 화장을 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다. 때로는 순서를 다투느라 유족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아귀아귀 밥을 퍼먹다가 숟가락을 쥔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새우잠을 자다가도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복받쳐 이불을 흥건히 적시기도 하였다.

이런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욕망과 본능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문득 자신이 바로 생사의 번뇌에 갇혀 발버둥 치는 어리석은 중생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생의 유골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한 다음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그의 법명이 명진이다. 현재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 스님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명진 스님을 만나 그가 출가하게 된 사연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해인사와 봉암사를 비롯한 여러 절집에서 철마다 거르지 않고 참선 수행을 한 수좌답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가족사도 담담하고 여유롭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객관화하여 묘사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말에는 지극한 슬픔을 통해 우리 같은 세속적인 인간들이 추구하는 명예와 돈, 권력, 욕망의 허망함을 꿰뚫고 뛰어넘은 자의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지극한 슬픔은 진실을 깨닫게 하나니,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허수경의 시)

그는 탈속한 수도승이지만 세속의 인연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조영래 변호사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송광사의 조그만 암자에 파묻혀 고인의 천도를 위해 혼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봉은사에서 천일기도를 하던 중 신도인 권양숙 여사의 간청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여 불교의식을 집전하고 천일기도를 끝낸 후 제일 먼저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한 것도 힘없고 약한 이웃에 대한 그의 지극한 연민에서 비롯된 그다운 보살행이었다. 그 자신이 바로 유가족이었으므로 유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님의 행적을 세속적 잣대로 좌파니, 진보니 하고 찧고 까부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말법시대의 말장난일 뿐이다. 온갖 구실로 병역의무를 회피한 자들이 안보와 애국을 독점하고, 불법과 탈법으로 권력과 돈을 움켜쥔 자들이 국민에게 정직하라고 훈계를 하는 세상이 바로 말법시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명진 스님의 죽비 같은 법문을 듣고 대오각성하기 바란다.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으냐에 있다. 허언필망(虛言必亡), 거짓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는 법이다."

영남대 독문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타인의 영화 필름 나르던 소년, 마침내 자신의 세계를 비추다
  3. 3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4. 4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5. 5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6. 6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7. 7국감서 발언하는 해양수산부 장관
  8. 8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9. 9“시민 1인 1스포츠가 일상인 부산으로”
  10. 10‘청문 부적격 2인’ 임명 고심…전재수 “치명적 흠결 못 찾아”
  1. 1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2. 2“북극항로 경제성 철저검증…후속계획 반영을”
  3. 3법정 이어 국감까지…LH, 명지 폐토사 처리 뭇매(종합)
  4. 4경찰청장 대행 “한동훈 딸 의혹, 재수사 가능성 배제 안 해”
  5. 5국힘 ‘골프 특검법’ 예고하며 공세…주진우 ‘명 끊을 때’ 댓글에 與 격분
  6. 6[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35.2%…민주 35.5%·국힘 41.3%
  7. 7경찰개혁·김지용 중수청장 청문도 공방 예고…부산 해수부 첫 국감
  8. 8경남도 대변인 “박완수 지사 13시간 조사, 정치공세 대상 되면 안 돼”
  9. 9[속보]국감까지 간 '부캉이' … 여야 "상어 생태환경 연구확대 필요"
  10. 10與·한동훈 점입가경 공방 인신공격까지(종합)
  1. 1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2. 2“항만공사 통합 목적·절차 불투명” 여야 없이 질타
  3. 3AI인재 양성 지원금 94% 수도권 쏠림…부산 1.5% 불과(종합)
  4. 4상호금융 339곳 대출 연체율 10%
  5. 5감천항 동편부두 이름 ‘원양부두’로
  6. 6부산서 ‘순직선원 위령제’ 열린다
  7. 7주가지수- 2026년 10월 12일
  8. 8정부 ‘자율운항 협력’ 조선 공정으로 확대
  9. 9부산TP 지원 3社, 정부 AI·자율제조 사업 따내
  10. 10수입 수산물 유통이력 위반, 5년 전 0건 → 작년 73건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3. 3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4. 4“시민 1인 1스포츠가 일상인 부산으로”
  5. 5‘청문 부적격 2인’ 임명 고심…전재수 “치명적 흠결 못 찾아”
  6. 6‘100원 등하교 버스’ 경남 전역 확대…기초학력전담교사도 늘려
  7. 7“복지시설 몇 년 일했지만 퇴직금 0원”…공공부문도 꼼수 채용
  8. 84개월 만에 김경수 만난 박완수 지사 “제도 개선되면 부울경특별연합 검토”
  9. 9박완수 도지사 경찰조사 후폭풍…진보당 “사퇴하라” 道 “왜곡 말라”(종합)
  10. 10미란다 원칙 고지 않고서 허위 보고한 경찰 재판행
  1. 1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2. 2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3. 3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4. 4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5. 5과감한 샷 2R 버디 11개 폭발…유현조 ‘부산의 퀸’(종합)
  6. 6울주군, 삼남읍 교동리에 ‘울주실내테니스장’ 개장
  7. 71부 승격 향한 마지막 질주…부산아이파크, 막판 승점 쌓기 총력전
  8. 8차준환, 이번 시즌 국가대표·대회 출전 중단…서울시청과도 결별
  9. 9유도 차세대 간판 이현지, 세계선수권 정상 메치다
  10. 10허훈·킹 47점 합작에도…KCC, KT에 접전 끝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탁해놓고 감찰
대통령의 SNS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30% 중반 고착된 지지율, 국정 전반 재점검해야
교사 심리상담 급증…교권 침해 더는 방치 안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개척자 정신
빚을 물려받는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