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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겉으론 잘나가고 속으론 무너지는 만성피로 /이지양

개선없는 사회에 자포자기… 대한민국 현재 모습 아닐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11 20:34:5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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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예상되어도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의 침묵만큼 무겁고 절망적인 것이 있을까. 사회 구성원이 모든 기대와 의욕을 접고 지쳐서 전부를 포기해버린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리라. 그런 집단에는 지도자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시간 차이가 있을 뿐 지도자 자신도 곧 무기력해지고 말 테니까. 오늘은 우리사회의 만성피로 문제를 꺼내놓고 싶다.

첫째, 술자리 피로감. 최근 연세SK병원 웰빙클리닉의 통계로 20, 30대 남녀 직장인 60.9%(103명)가 1개월 이상 피로, 25.4%(43명)는 6개월 이상 피로라는 보도가 있었다. 또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 조사로 직장인의 술자리 후유증이 야근 후유증보다 배가량 높다는 내용과 술자리 후유증으로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74.2%), '속이 좋지 않다'(61.6%), '업무집중력이 떨어진다'(55.4%)는 보도도 있었다. 이 두 기사는 '일과 술과 피로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서 매우 흥미로웠다. 일을 잘하자고 하는 회식이 도리어 일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가. 직장인들은 그렇게 피곤한 술자리와 야근을 일주일에 각각 2.2회, 2.3회를 했다.

둘째, 비리 누적 피로감. 여전한 음주운전과 교통사고,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 121명, 차량 100만 대당 사망자 수 226명, 2009년도에 세계 교통사고 순위 6위였던 대한민국이 2010년이라고 10위권을 넘어서진 않을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비리 보도, 그뿐인가, 검사들조차도 관행처럼 뇌물이나 성 접대를 받았다는 고발, 공무원 뇌물 수수도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그래도 국민들은 무심하게 침묵한다.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되는 사회에 대한 자포자기랄까. 누구 하나 책임지고 어떻게 개선했다,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보도는 없건만, 그래도 국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늪을 연상시키는 침묵, 그 지대, 그 구조에 얽혀들면 당하는 것 뿐 늪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킨다. 왜? 사는 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므로.

셋째, 경제회복 피로감.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중 국제수지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무역 규모·자본수지 모두 늘었고 이제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민 다수는 전혀 기쁘지 않다. 경제적 통계수치가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절대값으로 왜곡시켜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치안 불안이 심해서 호신용품 및 방범 관련 사업이 번창하면 그 사회는 안 봐도 불신과 공포의 지옥이고, 향락 서비스업이 발달하면 그 사회는 가정해체 관계 해체가 급속도로 진행되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화와 드라마 도박성 게임이 인기 절정인 사회에서는 아이들 정신질환이 심해진다는 것을 얼마나 생생히 자각하는지 궁금하다. 디스토피아 산업이 발달하든 유토피아 산업이 발달하든 간에 경제성장 수치는 똑같이 올라간다. 경제 성장의 내용과 질을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경제 회복이 모든 국민을 이토록 만성피로로 몰아넣는 이유는 누가 생각해보는 걸까. 경제회복이 피로할 뿐인 국민이 늘고 있지 않은가.

넷째, 업적제일주의, 점수제일주의 피로감. 현재 인문계 대학 통폐합이 진행 중인 중앙대 사태는 우리 교육현실이 직면한 문제를 참 잘 드러내 보여준다. 학점은 화려하고 우수한데 할 줄 아는 것은 없는 졸업생, 논문과 저서는 많은데 그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은 교수, 그런 학생과 교수가 되라고 다그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외국에서 인력 스카우트하려고 기웃거리는 대학 재단. 이 삼박자가 척척 맞는 공허함을 드러내 보여주니까.

업적제일주의가 양질의 교육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사랑으로 헌신적인 지도 육성을 해야 다음 세대가 자랄까 말까 한데, 스승과 제자가 물량적 성과로 업적이며 연봉 경쟁을 부추김 받는다면 그게 가고 싶은 학교가 되겠는가. 학생들이 학교 가기 싫다고 선언하는 문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태가 아닌가. 그런데도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왜? 피로하고 만사 귀찮으니까 함께 망할 때까지 침묵한다. 대한민국이여, 이 만성피로 증후군을 다 어찌할 것인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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