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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허남식 대 김정길 /권순익

야당 경선 펼친 부산시장 선거, 무기력했던 선거판 '일대회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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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허남식과 김정길 후보는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결단을 해봤던 사람들이다. 그게 오늘 두 사람을 있게 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이란 보상의 크고 작음, 개인적 희생의 많고 적음 따위의 타산을 뛰어넘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 자체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김정길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218석의 거대여당 민자당이 탄생할 때 합당을 거부했다. "합당 바람이 지나고 나니 노무현 의원과 나만 남아있더라"고 그는 썼다. 김정길은 재선의원이었고 김영삼(YS)의 통일민주당 수석부총무였다. 거제 장목초등학교 출신인 YS의 유일한 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했다. YS의 아성인 부산에서 그를 따라가지 않는 건, 정치적 사망선고를 의미했다. 김정길은 그러나 그 길을 택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부산에서 선거에 계속 떨어졌다. 그는 YS 집권 후 장관 자리를 제의받았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고 국민의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이 됐다.

대학원 학생 때 행정고시에 합격, 부산에서만 공직경력을 쌓아온 허남식은 2004년 5월 시장 보궐선거 출사표를 던진다. 바로 직전 안상영 시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돼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정 바람이 거세던 노무현 정부 초기였다. "누가 또 걸릴지 몰라" 부산지역 공직사회가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던 때다. 정무부시장이던 그가 압력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집에도 며칠간 들어가지 않고 고민을 거듭했다. "'결연한'심정으로 시를 떠나 부산 발전을 위해 준비하겠다"는 퇴임사를 놓고 "외유(外柔)가 내강(內剛)을 보여줬다"는 말이 나왔다.

허남식의 고향은 의령이고 김정길은 거제다. 같은 경남에다 나이도 61세, 64세로 외모나 말투도 닮은 점이 많다. 일단 온화한 인상을 주고 친근감을 준다. 허남식은 시장이 되기 전에도 단정한 외모만큼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언행으로 민·관 모두에게 신사라는 평을 받았다. 김정길도 야당의 설움을 겪고 정치적 낭인생활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에게서는 거칠거나 투사적인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닮은 점은 여기까지다. 정치인과 관료는 본질적으로 다른 직업이다. 행자부장관 경험이 행정능력을 보증할 수는 없고 광역시 시장으로서의 정무적 경험이 정치적 판단력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시키는 것과 자신이 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정치인 출신이 추세에 기민하고 대국을 보는 편이라면 안정적인 추진력과 실무에 밝은 건 관료 출신의 장점이다. 엊그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일합을 겨룬 부산 KBS 토론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며 허남식이 공격할 때 "정책은 없는 길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김정길이 맞받아쳤다. 그건 두 사람의 시선이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3선 제한 때문에 이번 선거가 마지막 선거이기도 한 허남식은 당내 경선을 거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집권당이던 1995년, 문정수가 시장 후보로 추대된 이후 15년 만의 무경선이다. 당시 야당이던 꼬마민주당은 노무현 부총재와 황백현 부산진을 위원장이 경선을 벌여 노무현을 뽑았다. 이번에 민주당에서 김정길과 김민석이 치열한 당내 경선을 펼친 건 그때의 재현인 셈이다. 김정길은 더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까지 벌여 야권의 유일 후보가 됐다. 거의 20년간 한나라당 일당독점인 지역이 부산이다. 그곳에서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가 선명하게 세워진 것이다.

한나라당의 시장 후보 무경선 과정을 보며 그 많은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 정치인들의 '직무유기'라 생각했던 기자는 이번 선거가 모처럼의 '일대회전'이 됐으면 한다. "부산에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사직야구장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 지 오래됐다. 인천이 부산을 치받고 이미 추월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여야가 선거 때마다 수도권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않다. 가혹한 검증과 심판이 없는 선거란 결국 무기력한 시정으로 이어질 뿐이다. 김정길과 허남식,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벌이는 난타전의 소음 속에서 '안타까움도 분노도 잊은' 이 도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자각하며 깨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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