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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상상력이 살아있는 도시를 꿈꾸며 /김수우

시간이 지워지고 자연성을 잃은 하얄리아 개발에 가슴이 울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25 20:34:4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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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창을 열면 바다가 넘실, 들어선다. 물비늘이 반짝반짝 따라 들어온다. 문득 넉넉해지면서, 내가 이 도시에 푸른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의 도시', 송도 바닷가로 이사 온 후 종종 떠올리는 말이다. 그 틈새로 어떤 풍요가 슬며시 번진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는 환상적이고 은유적인 도시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도시와 맞물린 욕망, 기억, 기호, 교환 등의 풍경들이 거울처럼 이 시대를 비추어준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더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도시는 계단 수나 아치의 형태가 아니라,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창문 홈통의 기울기와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 사이의 관계로 도시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진정한 도시를 헤아리곤 했다.

하얄리아 부대가 개방된 후 몇 번 그 숲길을 걸었다. 오롯이 남아있는 과거는 지금 한창 녹색이다. 한때 범전동에 살아, 그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성장한 탓인지 마음이 애틋했다. 사람이 떠난 지 4년인데도, 나무와 꽃들이 그 시간을 성실히 책임지고 있었다. 수령 백 년이 가까운 향나무 숲을 비롯, 플라타너스, 히말리야 시다, 미루나무 등 거목들이 경탄스럽고, 50년대에 세운 나무전봇대들도 정겨웠다. 모퉁이마다, 빈 관사마다 부지런히도 핀 꽃들.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이룬 조화가 눈부시다.

그 하얄리아를 까까머리로 밀어버리고 새로운 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입구에 세운 조감도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기하학적인 꽃밭과 분수들, 인공으로 조성된 길.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부산다운 느낌이 전혀 없는 기계적인 공원이었다. 인위는 늘 은박지로 싼 쿠키와 같다. 시간의 향기가 지워진, 자연성을 잃어버린 조형적 공원은 오히려 우리 상상력을 빈곤하게 한다. 기억이 단절된 도시, 시민을 기억상실자로 만드는 작업 같아 가슴이 울컥했다.

상상력의 수원지는 자연과 기억이다. 두 요소가 충분히 어우러질 때 도시는 의미와 장소성을 획득한다. 옛 이미지들이 중요한 건 결국 시민의 기억과 상상력을 위해서다. 역사가 현실과 미래를 위해 중요하듯 말이다. 시대정신을 길러내고 역사를 세우는 일이 그 시대를 사는 시민의 의무라면 일상의 기억과 그 관계의 적층은 얼마나 소중한 걸까. 상상력은 결국 기억에서 나오고, 도시는 기억에 흠뻑 젖으면서 팽창한다. 오래된 것들이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지층을 통해 도시는 자기만의 개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과거는 마치 손에 담긴 손금들 같다. 여기저기 스민 시간의 흔적들이 현실을 구성한다. 과거는 살아가는 여정에 따라 흐른다. 그 연속적인 파장 속에서 도시는 비로소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 긴밀함이 시민의 성품과 연관되고, 또한 자긍심이 되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얼마나 위대한 시간의 힘을 지니는가. 시민들의 꿈을 촉발하는 도시가 진정 살아있는 도시이며, 감응하는 도시이다.

감지해보라. 빌딩이 아니라, 그 아래에 걷는 내 무릎과의 관계가 도시를 형성한다는 것. 수레 위의 노란 참외와 가족을 떠올리며 참외를 고르는 내 손길, 그 사이에서 도시는 빛난다. 관계를 통해 생명은 조화를 이룬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곳, 관계가 살아있는 곳. 그것이 우리가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리라. 하얄리아에 놓인 활용 충분한 건물들과 나무들, 그 축적된 시간과 가능성과 조응하는 것만으로 공원은 이미 부유하다.

명품이라는 단어가 도시 개발에도 유행 중이다. 중요한 건 생명이 작동하는 것이며, 생명은 무화될 수 없는 시간의 문제이다. 재생은 개발과는 다르다. 재생은 생명 본래의 모습을 불러내는 작업이다. 여기에 천심(天心)이 필요하다. 자연의 재생능력처럼 도시 재생도 무한한 신화를 캐어내는 힘이어야 하리라. 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통해서, 물질가치를 넘어서는 생명가치를 확인하는 하얄리아 공원이길 꿈꾼다. 누구나 '나의 도시'를 읊조릴 수 있는, 감응이 넘치는 부산.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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