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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의 대범한 조정과 일본의 소심한 수정 /이영식

최고 권력 융통성 허용 vs 거부

어느 사회가 더욱 안정적 발전할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29 21:15:5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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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전격 사임했다. 소득신고 누락,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난항 등으로 출범 당시 60%를 넘던 지지율이 19%대로 급락하였다. 그래서 퇴진은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임 발표 이틀 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의 대부 오자와와의 회담을 끝내고 기자단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등 정권의 계속을 호언하던 그였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더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5년의 임기와 초월적 권력의 대통령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취임 8개월 만에 터져 나온 국가 수장의 사임은 충격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근년의 일본 정치가 불투명해졌다는 등 특별한 분석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정작 일본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우리와 많이 다른 것 같다. 나중에 안중근 의사에 의해 동양 평화의 원흉이라는 죄목으로 사살되는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로 부임했던 1886년부터 하토야마에 이어 8일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까지 124년 동안 무려 94대 61명의 총리가 바뀌었던 역사가 있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3개월 정도였다. 2개월도 못 되어 54일 만에 물러난 총리도 있다. 일본 헌법에는 총리 임기가 몇 년이라는 규정이 없다. 오히려 일본 국민들에게는 총리란 자주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이 익숙하다. 초월적 권력에 의한 한 번의 통 큰 개혁보다 여러 기회를 통한 부분 수정에 익숙한 일본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단명했던 하토야마 정권이지만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던 정책이 있었다. 중학생 이하의 자녀를 둔 모든 부모에게 매월 자녀 1인당 2만6000엔(약 35만 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시행 첫해인 올해는 재원문제로 절반인 1만3000엔을 지급하기로 했고, 드디어 지난 1일부터 전국적으로 일제히 지급됐다. 현금으로 수당을 받아든 부모들의 환한 얼굴이 텔레비전에 비치기 시작하면서 하토야마 총리는 정권의 계속을 호언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수당이 지급되는 현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이 나타났다. 지자체는 수급대상자 모두에게 신청서류를 발송했지만 실제 지급신청자는 50% 정도에 불과했다. 돈을 준다는데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이 반이나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공무원 신분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신청하지 않은 것이었다. 사회복지 담당의 후생노동성이 지자체의 수고와 경비를 덜어주기 위해, 공무원은 자신의 주소지가 아닌 근무지에 수당지급을 신청하도록 지시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주소지 지자체에서 발송된 신청서류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따로 근무지에 지급신청을 했다. 정부기관이 지자체를 돕는다고 내렸던 명령이 오히려 혼란만 야기시켰고, 지자체는 불필요한 신청서류 발송 작업에 철야를 하고, 관청의 업무도 배가 되어 6월 중에 전국적 지급을 완료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게 됐다. 공적 업무 진행일정에 좀처럼 착오가 없는 일본 행정에서 아주 드문 사례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됐던 문제였다. 각 지자체는 후생노동성에 공무원 명부의 회람을 신청하였으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당했다. 절반 이상이 휴지가 될 걸 알면서도 밤새워 봉투에 넣으며 풀을 부치고 우체국으로 나르던 지자체 공무원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발송과 지급의 이중적 노력과 예산 낭비는 물론 근무지와 거주지에서 중복 수령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뻔한데도 조정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낼 거고, 그러면 어느 쪽으로든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최소한 선의니까, 현재의 법과 관행을 깨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초월적 권력의 융통성이 일본을 따라잡고 어떤 부분에서는 뛰어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사회가 이러한 모순과 비효율을 알면서도 초월적 권력에 의한 조정을 터부시하는 것은 각 분야에서 축적해 온 전문적 경험을 존중하려 함이다. 선의가 분명하다 해도 우발적인 개입과 조정의 그늘에는 권력의 남용이란 독버섯이 자라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과 직결되는 부정이 우리보다 적었던 배경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와 비교해 어느 쪽이 예상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인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인제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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