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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세 가지 불행 /신명호

인생이란 '길고 긴 여정'임을 가르쳐 주는 옛사람들의 지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04 21:13:4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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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행(三不幸)'이란 '세 가지 불행'이란 뜻이다. 이 말은 '소학(小學)'이라는 책에 나온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서삼경과 함께 교양필수로 읽었던 책이 '소학'이다. 삼불행은 '어린 나이에 대과시험 합격', '부모덕에 요직 차지', '높은 재주에 문장도 잘함'의 세 가지 불행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삼불행은 전혀 불행이 아니다. 오히려 커다란 행운이자 축복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평생 꿈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대과시험에 합격해 고관대작이 되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대과시험 합격'하고 '부모덕에 요직 차지'하는 일은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꿈같은 일이었다. '높은 재주에 문장도 잘함' 역시 꿈같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소학'에서 이 세 가지를 행운이자 축복이 아닌 불행이라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나이에 대과시험 합격'이 불행인 이유는 학문이 무르익기 전에 과거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도한 문과 합격자는 총 1만5151명이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30대에 생원 또는 진사가 되었다가 40대에 이르러서야 문과 최종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응시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10대에 합격하는 사람도, 80대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0대의 어린 나이에 문과에 합격하고 나아가 장원급제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본인의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이었다. 뿐이랴? 지역사회의 영광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어린 천재에게 하늘처럼 높은 기대를 건다. 그에 동반하여 시기와 질투 역시 하늘처럼 높아진다. 하지만 원숙한 학문과 인격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하늘 같은 기대나 질투는 부담이자 스트레스다. 그런 부담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 나이에 대과시험에 합격한 것이 행운이자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일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최연소 문과장원이라는 영예를 차지한 주인공은 박호라는 분이었다.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문과 장원이 되었다. 장원급제 후, 그는 홍문관 수찬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26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그는 이일 장군의 종사관이 되어 상주 전투에 참여했다. 결과는 참혹한 패전이었다. 이일 장군은 말을 버리고 옷을 벗어버린 채 머리털을 풀어헤치고 알몸뚱이로 달아났다. 그때 박호는 '나는 18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전세가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 라며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박호의 젊은 꿈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이외에 음서(蔭敍)라고 하는 제도가 있었다. 나라에 크나큰 공로를 세운 사람의 후손들을 양반관료로 임명하는 제도가 음서였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조상 덕에 요직 차지'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상의 음덕이 뛰어나도 본인의 재능이 부족하면 사람들의 지탄을 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능도 없이 순전히 '조상 덕에 요직 차지'한 사람은 후안무치한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되거나 했다. 그렇다면 '높은 재주에 문장도 잘함'은 어떨까? '홍길동전'을 남긴 허균,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 그리고 '어부사시사'를 노래한 윤선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재주꾼이자 문장가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평탄하지가 않았다. 허균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를 앞장서서 공격하다가 도리어 본인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정철과 윤선도는 반대 당파 사람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데 앞장서다가 유배에 처해지곤 했다. 허균, 정철 그리고 윤선도는 '높은 재주에 문장도 잘' 했지만 덕이 부족했다. 자신들의 높은 재주와 뛰어난 문장을 감싸 안을 만한 관용과 포용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도 불행했고 주변 사람들도 불행했다.

'삼불행'에 대비되는 말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학문을 닦고 인격을 연마해야 한다. '소학'의 삼불행에는 사람의 인생이란 절대 '한 방'이 아니라 '길고 긴 여정'임을 보여주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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