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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사청문회 유감 /오창호

고위 공직자들은 막강한 권한만큼 더 높고 합당한 도덕적 기준 지켜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25 22:07: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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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수주의자는 부패해서 망하고, 진보주의자는 논쟁하다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주의자는 기득권자이기 때문에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불법, 탈법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부패할 수밖에 없고, 진보주의자는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고 이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시비를 가리는 이른바 노선싸움에 몰두하기 때문에 분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주의자에게는 언제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반면 진보주의자에게는 늘 단합이 문제가 된다.

이러한 공식이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경우가 바로 우리의 정치현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사청문회 인사 중 상당수가 위장전입,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등등의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일부는 위법사실을 시인했다. 특히 위장전입의 경우 거의 모든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이 그 위법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거주지는 옮기지 않고 주소만 바꾸는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다.

최근 우리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국민통합의 방법론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분노와 좌절감을 달래주고 덜어주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모든 국민이 법 아래서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준수함은 물론 고위공직자는 막강한 권한에 합당한 더욱 높은 도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강조한 '공정한 사회'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도덕성의 회복을 지향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 수준은 곧 그 사회의 건강성의 정도를 보여준다. 사회가 병들어 있는지 아니면 건강한지를 가늠하고자 한다면 인사청문회 대상자들의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은 도저히 묵인하기 어렵다. 대법관이 어떤 자리인가? 법원 중에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법관으로 이 사회의 양심과 정의를 표상하는 자리가 아닌가. 정치적 여야를 막론하고, 계층적 갈등관계를 떠나 모든 국민이 순응하는 사회적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가 아닌가 말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분쟁의 최종적 해법이며 사회정의의 최후의 보루이어야 한다.

혹자는 말할 수 있다. 법관의 임무는 법조문의 완전하고 정확한 해석과 적용일 뿐, 인간으로서의 법관의 완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은 법이 하는 것이지 법관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이는 말과 행동을 분리해서 말의 부담을 덜려고 하는 책임회피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현대의 철학자 들뢰즈는 언어활동의 본질은 명령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일차적으로 의미작용이나 정보의 전달, 의사소통에 관계된 것이기보다는 명령에 관계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학 교사가 학생들에게 "1+1=2"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답을 쓰라" 내지 "이렇게 계산하라"는 명령어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장을 뜻하는 영어단어 sentence의 또 다른 의미가 선고, 판결, 처형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맥락에서 판사직을 버리고 출가한 우리 시대의 선지식인 효봉스님의 이야기는 큰 울림이 있다. 효봉스님은 식민지시대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귀국해 조선인 최초의 법관이 되었다. 스님은 10년간 식민통치하의 법관 생활을 하면서 일제의 만행에 늘 회의와 방황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한 인간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되었다. 법률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괴감에 괴로워하던 스님은 어느 날 홀연히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 화려한 판사옷은 나를 속박하는 쇠사슬일 뿐!"이라고 선언하고 판사 관직을 버리고 구도의 고행을 떠났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은 효봉스님과 같이 고결한 도덕성을 갖춘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한 인간의 도덕성은 기능적으로 무능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혼탁한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원기이다. 이 원기가 성하면 그 사회는 생명력을 얻어 건강하게 되는 것이고 쇠하면 생명력을 잃어 병들게 된다. 도덕성의 근본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 있는 것, 염치 있는 자는 누구이고 염치없는 자는 누구인가?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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