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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꽁생원이 필요한 시대 /신명호

현실적이고 융통성 넘쳐 타락하기 쉬운 지금

원리원칙에 충실한 꽁생원이 그립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29 21:10:5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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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생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고 소견이 좁은 사람을 놀림조로 일컫는 말'로 해설되어 있었다. 내친 김에 속담도 찾아보았다. 꽁생원 자체는 없었지만 '생원님은 종만 업신여긴다'는 속담이 있었다. '무능한 윗사람이 덮어놓고 아랫사람만 야단친다는 말'이라는 뜻이란다. 이로 볼 때, '꽁생원'이란 말이나 '생원님은 종만 업신여긴다'는 속담의 주인공은 조선시대의 생원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생원은 왜 무능하고 속 좁은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조선시대 생원은 진사와 함께 소과(小科)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소과에 합격한 생원 100명과 진사 100명은 성균관에 진학해 공부하다가 대과에 합격하면 양반관료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균관의 생원이나 진사는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이라는 면에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생원만이 무능하고 속 좁은 사람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학업내용과 출신배경 때문이었다.

생원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대표되는 유교경전을 공부하였고 시험도 사서오경 중에서 치렀다. 반면 진사는 시(詩)나 부(賦)를 공부하였고 시험도 시나 부 중에서 치렀다. 이것이 큰 차이를 불러왔다. 사서오경 위주로 공부하는 생원은 유교 경전만 열심히 암기하면 합격할 수 있었다. 반면 시나 부는 기본적으로 창작 또는 논술이기에 단순한 암기보다는 상황에 따른 다양한 창작 또는 논술 연습이 필요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생원시험은 시골출신에게 유리했고 진사시험은 수도권출신에게 유리했다. 시골출신들은 별다른 교재 없이 오직 사서오경만 가지고 주야로 암기했기에 생원시험에 유리했다. 반면 수도권출신들은 시골출신에 비해 다양한 문물을 경험함으로써 불특정 영역에서 출제되는 시나 부에서 유리했다. 사서오경만 공부한 시골출신의 생원 그리고 시와 부를 두루 공부한 수도권출신의 진사를 비교하면 어떨까? 좋게 말하면 생원은 자신들이 공부한 유교 경전의 이념에 충실했다. 그래서 원리원칙을 중히 여겼으며 웬만해선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 시와 부를 공부한 진사들은 현실적이었으며 융통성도 많았다. 예컨대 조선시대 최고의 보수주의자로 꼽히는 우암 송시열은 충청도의 생원출신인 반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개혁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의 진사출신이었다.

그런데 생원과 진사의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했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생원은 고집불통이거나 위선적일 때가 많았다. 반면 현실적인 진사는 지나치게 융통성을 발휘하다가 부정부패하거나 타락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의 '초당문답가'라는 작품에는 고집불통에 위선적인 생원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초당문답가 13편 중 하나가 '우부편(愚夫篇)'인데, 제목 그대로 어리석은 남자 3명을 노래한 가사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우부편의 세 주인공인 개똥이, 꼼 생원, 꾕 생원 중에서 생원이 두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저 건너 꼼 생원은/ 제 아비 덕분으로 돈 천이나 가졌더니/ 술 한 잔 밥 한술을 친구대접 하였던가/ 주제넘게 아는 체로 음양술수 탐호(貪好)하여/ 당대발복(當代發福) 구산(求山)하기 피란 곳 찾아가며/ 올 적 갈 적 행로 상에 처자식을 흩어놓고/ 유무상조(有無相助) 아니하면 조석난계(朝夕難計) 할 수 없다/' 우부편에 등장하는 꼼 생원, 즉 꽁생원은 사회성도 떨어지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가까운 친구들도 관리할 줄 모르니 유력자에게 줄을 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입신출세는 어렵다. 심지어 처자식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다. 꽁생원은 좌절된 현실의 욕망을 음양술수로 채우려 하지만 될 턱이 없다. 이런 꽁생원은 무능하고 속 좁은 사람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500년간 왜 국가에서는 그토록 무능하고 속 좁은 생원을 계속해서 양성하였단 말인가? 그 까닭은 생원의 장점 때문이었다. 많은 생원들이 무능하고 속 좁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원리원칙을 지키는 생원들도 많았다. 무능하고 속 좁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생원들이 역설적으로 현실적이며 융통성이 넘치지만 쉽게 부정부패하고 타락해 버리는 진사들을 견제함으로써 조선시대를 건강하게 지켜냈던 것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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