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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공공디자인과 사람을 보는 안목 /강영조

디자인 개념 없이 지역특산물로 치장한 가로등… 도동서원 같은 철학이 아쉽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06 20:10:2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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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나라의 저명한 건축가들과 '도동서원'을 답사했다. 도동서원은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과 함께 5대 서원으로 꼽는다. 이 서원은 김굉필(1454~1504)을 모신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마을로 넘어가는 다람재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우리는 고갯마루에서 산기슭 자드락에 자리 잡은 서원 건물들과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 꿈결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숨죽여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공부하던 선비들은 늘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곳에서 유능한 인재가 자라난다고 믿었던 것일까.

도동서원은 강당인 중정당 건물의 기단이 인상에 남았다. 화강석으로 바른층 쌓기를 했는데 그 돌의 형태가 4각형뿐 아니라 크고 작은 돌을 마치 조각보처럼 잘라 맞추어 쌓아놓았다. 그 조각들의 정교함이란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는 듯했다. 제례의 행동을 고려하여 제실로 오르는 계단의 경사를 처음에는 급하게 하여 눈을 땅으로 보게 했다가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다시 느리게 하여 시선을 제실 문 앞으로 두도록 한 것 등 400년 전 선조들의 디자인 감각에 답사자 모두 감탄을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입을 모아 인정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건물이었다.

2시간 정도를 거기서 보내고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국밥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당연히 그곳으로 차를 옮겼다. 산모롱이를 몇 차례 돌기를 거듭하자 작은 도시가 나타났다. 키 작은 건물들이 멀리 비슬산에서 흘러나온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작은 개천을 따라 난 길로 들어섰을 때다. 차창으로 강가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차 안은 왈칵 소란스러워졌다.

그 가로등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단풍나무 가지 몇 줄기가 붉은 이파리를 매달고 있었고 등 기둥 중간쯤에는 한복을 잘 차려 입은 여자가 청사초롱을 들고 서 있었다. 도시를 감싸는 산과 작은 개천, 그리고 적당히 낮은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던 자잘한 풍경은 그 노골적인 가로등 때문에 소란스럽고 들떠 있었다. 도동서원에서 느꼈던 고격(高格)과는 판이하게 다른 하품(下品)의 디자인이다. 이른바 공공디자인 열풍이 이런 시골 도시까지 불어닥친 것일까.

실은 이곳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에서는 이런 즉물적인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추로 유명한 곳은 가로등에 고추를 매달아놓고, 수박으로 유명한 고장에는 그 초입에 타이어 광고판인지 기계의 톱니바퀴인지 구분하기 힘든 수박 조형물을 세워두고 있다. 단감인지 호박인지 모를 조형물도 길거리에 내놓고 있는 곳도 있다. 나비로 유명한 곳은 나비 가로등, 양파 주산지에는 양파처럼 생긴 흰 등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가로등도 있다. 호랑이를 붙여 그곳이 호미곶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가로등. 포구 초입에 대게가 올라탄 가로등.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공공 시설물에 그 지역 특산물을 조형물로 해서 부착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갈매기를 올려놓은 가로등, 교량의 중앙에서 뜬금없이 솟구치는 고래, 심지어 조용한 포구에 야구공과 배트, 헬멧을 조합한 등대를 지역성이라는 미명하에 세우려고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주위의 공공 시설물이 유치하거나 장소에 걸맞지 않은 것은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가 실력이 없거나 그런 디자인을 선정한 실무자나 심사위원의 안목이 낮기 때문이다. 공공 영역에 설치하는 공공시설물이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발주처 과장이나 국장, 군수나 시장, 지자체 의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시대를 초월하여 상찬받는 건축물이나 공예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와 장인을 데려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공공디자인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지금 공공디자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디자이너를 골라내는 안목이며 또 그 디자이너가 결정한 것을 존중하는 시스템이다. 도동서원을 만들 때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솜씨 좋은 장인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이 아닐까.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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