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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길들여지면 길이 안 보인다 /장희창

독재자 영웅시하며 역사 되돌리려는 세력, 지향점은 '불문가지'

권력·부 틀에 갇히면 헤어나오기 힘들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10 21:07:0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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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자본에 순치된 앵무새 방송을 보면 짜증나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괜찮은 프로그램은 있다. '생활의 달인'도 그중 하나다. 한 분야에서 경지에 달한 달인의 얼굴에는 끈기와 정직함이 배어 있다. 비약이 없다. 논문을 쓰면서 저들처럼 성실했던가, 논리비약과 과대망상의 연속은 아니었던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편법이 일쑤인 정재계와 학계보다는 이들 생활 속의 달인들이 오히려 우리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는 중심이 아닐까?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에서 던지는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지./ 그런데 그는 혼자였던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지./ 그런데 그의 옆에 요리사는 없었던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승리./ 그런데 누가 승리자들의 연회를 위해 요리를 만들었던가?…" 익숙한 대상의 그 익숙함을 뒤흔들면서 실상을 투시하는 서사극으로 현대연극의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었던 브레히트. 그는 중심과 주변의 뒤집어보기를 끊임없이 역설한다. 멀쩡하게 보이는 세상을 뒤틀어보고, 찌그러뜨리고, 낯설게 만들어야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브레히트 연극의 '소격효과'는 그 점을 목표로 한다.

나치 체제에 치열하게 저항했던 독일의 작가 안나 제거스도 '약자들의 힘'이라는 작품에서 말없이 행동하는 인간들, 어떠한 역사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민초들의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강자의 시선이 아닌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재해석한다. 제거스의 다음 발언은 인간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름을 우리가 항상 떠올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우리가 말이다." 약자들의 힘이란 표현은 모순어법이다. 안나 제거스는 그 모순에 좌절하지 않고, 모순에 내재된 희망의 근거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아, 독일 사회에도 끝없이 반복되는 절망과 희망이 있었고, 수많은 전태일과 수많은 이소선 여사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한다.

우리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경멸하고, 독재자들을 영웅시하며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불문가지이다. 다시 왕조시대, 권력동물들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사유화 정도는 그 사회의 야만성과 정비례하기 마련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되기 마련이고, 부유하면서 타락하지 않기는 참으로 어렵다. 권력과 부의 틀에 일단 갇히면 헤어나기 어렵다.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는 그러한 틀에 갇힌 세상을 마음껏 조롱한다. '힘없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하겠다'라고 맹세하며 편력의 길에 나선 돈키호테가 처음으로 만나는 인물은 창녀들이다. 그의 눈에는 주막집 문 앞의 창녀들이 우아한 귀부인으로 보인다. 창녀와 귀부인을 하나로 보는 평등의 메시지가 돈키호테적 '광기'의 정체이다. 귀부인과 창녀가 같게 보이니 그가 장차 어떤 고배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 순수한 열정과 눈길 앞에서는 모든 것이 뒤집힌다. 광기에 찬 인물로 알려진 돈키호테는 알고 보면 '도통한' 인간이다. 브레히트의 시, 안나 제거스의 소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이처럼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해체하라고 설파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뒤집혀 있는 세상, 그들의 문학은 그 복원을 시도한다. 소유의 질서를 자연의 질서로 되돌리려는 혼신의 몸부림이다.

늦가을 바람이 차갑다. 낙엽은 무심하게 떨어진다. 떨어져 뒹구는 모습도 수북이 쌓인 모습도 보기 좋다. 굳이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 갈 것도 없겠다. 금정산, 장산, 백양산도 아름답다. 내가 걸어서 출근하는 가야돌산 길도 보면 볼수록 정겹다. 땀을 흘릴수록 몸도 시원해지고 잡념도 줄어든다. 다시 보니 모든 곳은 세상의 중심이며, 주변은 어디에도 없다. 자연의 본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중심이라는 생각도 주변이라는 생각도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아, 이제 다 왔다. 저기 앞에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연분홍 고무장갑을 낀 채 밀걸레로 묵묵히 복도를 닦고 있다.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실이라도 있는 것일까.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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