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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해의 새 희망을 꿈꾸며 /이한숙

경쟁에 짓밟힌 연대와 공감, 협력을 되살릴 때 비로소 희망은 시작된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6 20:30:3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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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유난히 우울하고 긴 한 해였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국경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지인들이 많은데 올해는 특히 한국 내의 전쟁 위험을 염려하는 안부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전쟁의 위협이 점점 일상이 되어 가는 걸 보면서 불안에도 면역이 생겨버린 듯 오히려 무덤덤해졌다. 사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일상이 전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규모가 무색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평균 근로시간이 1위이고, 시간당 노동보수가 20개국 중 15위다. 그런데도 올해 정부와 기업단체들은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 이주노동자, 고령자, 청소년 등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최저임금을 삭감하려 덤벼들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야 언제나 사회적 쟁점이 되곤 하지만 최저임금 삭감 주장을 들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서는 숙식비를 공제하고, 고령자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OECD 국가 중 임시직 근로자 비율이 1위인데도 정부와 기업은 한국의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부산을 떨며 비정규직 고용을 더욱 확대할 갖가지 방안을 들이밀고 있다. 정부는 불법파견으로 법적 판결을 받은 기업이 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사법부를 무시하는 데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이나 소수자의 권리 요구 투쟁에는 단호한 법 집행을 앞세워 법이 누구의 편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회복지 지출 비중과 공적연금 지출 비중이 OECD 국가 중 끝에서 2위인데도 대통령은 한국이 복지국가임을 당당히 '선언'했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데도 의무교육에 당연히 따라가야 할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공부방 급식예산마저 날려버린 현 정부와 대통령을 위해 백과사전의 복지국가에 대한 정의를 고쳐 써야 할 판이다. 복지국가는 정부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국가라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유일하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껍데기만 남았다.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휠체어를 끌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한 장애인들은 공권력의 신속한 대응으로 재빨리 끌려나왔고, 세계인권선언일에 인권상 수상자가 위원장의 면전에서 이런 인권위에게서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역사에 남을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제 이름에 걸맞게 '국가와 정부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기댈 곳 없이 막다른 곳에 내몰린 사람들은 절망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2008년 2위였는데 2009년 드디어 1위가 되었다. 2002년 즈음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이 교통사고 사망 비율을 앞지르기 시작한 후에도 자살률은 계속 증가했다.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5413명이다. 하루 42명 이상, 1시간에 1.8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경제적 능력을 잃었지만 마땅한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노인층 자살이 자살률 증가의 주요 원인이고, 최근에는 청년실업률의 증가와 함께 20대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사실 등이 우리 사회의 우울한 뒷면을 잘 보여준다.

국가와 사회를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처럼 '경영'하려는 사고는 경쟁이 지고지순한 사회적 가치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데 공헌했다. 승자가 소수일 뿐인 경쟁에서는 누구든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그렇지만, 헉헉대며 열심히 쫓아가도 대오에서 이탈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경쟁'이라는 실체 없는 망령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뒤통수에 총질을 해대는 통에 일상을 전쟁 같이 살면서 내 발에 누가 밟히는지, 내 팔꿈치에 누가 치이는지 돌아볼 사이도 없이 모두들 서로 먼저 가겠다고 냅다 달리고 있는 꼴은 아닐까.

어디로 왜 달리고 있는지 의문이 생겨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어진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가 경쟁이 짓밟아버린 연대와 공감, 협력의 가치를 되살려낼 때 거기서부터 새해의 희망이 시작되지 않을까.

이주와 인권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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