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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민주주의 퇴조의 징후 /장희창

민족 동질성 유지에 공들인 분단 독일

실질적 교류는커녕 파탄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는 무얼 말하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9 21:01:0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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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주먹다짐 수준에서 진행 중인 남북관계의 파탄을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대응으로 남한이 주변국의 자제요청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행한 것에 대해 독일의 정평있는 시사주간지 '슈피겔'(2010년 12월 22일)은 말한다. "새로운 군사훈련으로 남한은 북쪽에 있는 형제국가에게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려 한다." 무심결에 쓴 말이겠지만 '형제국가'라는 단어가 가슴을 찌른다.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북한이야 그렇다 치고, 어른이 좀 된 줄 알았더니 남한 너희들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소리일 것이다.

숙적인가 동족인가? 진부한 이분법이라 식상하지만 그래도 독일의 통일과정은 우리의 남북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분단된 독일은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서로 간에 형제국의 도리를 다하려고 애를 썼다.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다.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류와 신뢰구축은 그들에게 정책이 아니라 상식이었다. 당시의 야당이었던 보수적인 기민당은 애초에는 동방정책이 공산독재를 인정하고, 경제적 지원을 통해 오히려 공산체제를 유지시키게 된다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13년 동안의 사민당 정권이 끝나고 1982년 집권한 기민당은 자신들이 반대했던 동방정책을 오히려 더욱 확대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독일사회는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동방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일관성을 뒷받침했던 가장 커다란 동력은 서독의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시민들이 내건 구호는 "우리가 인민이다"였다. 그리고 이 구호는 곧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로 바뀐다. 슈타지, 곧 국가공안국의 억압을 뚫고 국민이 그 얼굴을 드러내는 단계, 즉 민주주의의 발현이 통일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다시 말해 형제애, 지속적인 상호 교류, 양국의 민주주의의 실현 그리고 냉전의 해소는 독일통일에 있어서 하나의 연속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 정권 들어 민주주의의 퇴조 현상과 더불어 남북관계가 악화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방정책은 곧 햇볕 정책이다. 서독은 정치와 통일을 화두로 삼기보다는 경제적, 인도적 교류에 치중했고, 동독사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고속도로도 건설해주고 우편물 발송비도 지원하고 심지어는 정치범의 몸값까지 지불했다. 동독의 정치범 3만 명 이상을 1인당 평균 9만 마르크의 현금 또는 현물을 지급하고 서독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1990년까지 서독의 동독에 대한 지원은 무려 900억 마르크 이상이었다. 엄청나게 '퍼주었다'. 우리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이런 식으로 서독과 동독은 전승국들의 감시와 참견을 유연하게 극복하고 실질적 교류를 통해 체온을 나누어 왔던 것이다.

2002년 3월 월드컵 행사 때 한국을 방문했던,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는 도착하자마자 휴전선을 다녀왔고, 다음 날 통일세미나에 참여하여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제를 놓고 갑론을박 하지 말고 작더라도 실질적인 교류를 하자고 역설했다. "정부 간의 소통이 힘들다면, 민간끼리라도 우선 우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남북의 작가들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이라도 휴전선에서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가파식 대결상황은 작가의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얼마 전, 군대에 간 제자가 휴가를 나왔다가 나를 찾아왔다. 보안 관련 기관에 차출될 기회가 있었는데, 면접관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북한은 우리의 형제국가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그래서 그랬는지 편한 보직으로 차출되지 못한 것 같다며 씩 웃었다. 권위주의 정권과 수구언론들이 발광 수준에서 전쟁을 선동하더라도 우리의 청년들은 이렇게 건실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사고는 엉뚱한 자들이 치고, 막상 나라를 지키는 것은 이들 청년들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지속적인 상호 교류, 형제애 그리고 민주주의는 독일통일에 있어서 하나의 연속과정이었고, 그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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