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다. 당일 한국에서 조간신문을 보고, 일본행 비행기에서 일본신문을 읽었다.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 역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조용한 온천여관에서 소리소리 질러가며 응원한 보람도 없이, 연장전 사투 끝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싸워준 태극전사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우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게임에 옥에 티랄까, 눈에 거슬리는 장면도 있었다. 전반 22분 페널티 골을 성공시킨 한국팀 기성용 선수가 TV카메라 앞에서 원숭이얼굴을 흉내 낸 장면이었다. 득점선수들의 골 세리머니가 그 메시지 때문에 문제가 된 적도 많았던 만큼, 이 일은 양국의 인터넷과 트위터를 달구었고, 일반 언론에 거론되면서 선수징계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비웃거나,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비하할 때 원숭이로 부르거나 그 특성에 빗대던 차별적 관습들이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정작 기성용 선수 자신은 일본의 AFC담당관에게 "일본인에게 한 것이 아니라, 소속팀 셀틱에서 뛸 때 나를 원숭이로 불러 차별했던 이들에 대한 세리머니였다"고 해명했다지만, 하필 서양인관중도 거의 없는 아시안컵 한일전에서 그런 세리머니를 펼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 같다. 더구나 기 선수 자신이 트위터를 통해 "욱일승천기를 보는 내 가슴은 눈물만 났다" 또는 "나는 선수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고 했다는 대목은 일본을 겨냥하고 일본인을 희화화했던 세리머니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그 진의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보기 사나웠던 그림은 우리 골의 기쁨을 반감시켰고, 금방은 무슨 메시지인지 알 수 없어 한동안 어리둥절해야 했다.
경기 후에도 계속되는 논란을 지켜보다 문득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안정환 이천수 선수 등이 펼쳤던 쇼트트랙의 골 세리머니가 생각났다. 같은 해 2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때 안톤 오노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강탈해 간 것을 흉내 내, 미국의 오심과 오노 선수의 비겁함을 통쾌하게 꼬집었던 것이다. 산뜻했던 '쇼트트랙'에 비해 '원숭이'가 칙칙하고 불편한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여럿 있었을 것이다. 시각적 효과, 시의의 적절성, 개인기와 팀워크, 단순한 흉내와 독창적 퍼포먼스, 반칙에 대한 성토와 인종이나 민족적 차별 등 같은 차이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쇼트트랙'은 모든 사람이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원숭이'는 그렇지 못했다. 전자에 비해 후자에 담겼던 메시지와 꼬집겠다는 목표가 애매했던 것은 아닐까? 전자가 작지만 직접적 항의가 가능한 근일의 문제였던 데 반해, 후자는 합병 100년에 광복 65년 이상 오래되고 너무 큰 문제였기 때문은 아닐까? 원래 골 세리머니 정도로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그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전달의 실패는 현실감 없는 반일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나 일본문화에 대한 별다른 교육과 이해도 없이 부모세대의 푸념 정도로 형성된 막연하고 감정적인 반일정서가 문제를 일으킨 듯하다.
사실 일본인들의 원숭이에 대한 인상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가까운 나라지만 식생의 차이가 있어 한국에는 없지만 일본에는 흔한 게 원숭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세대는 동물원에서조차 원숭이를 봐도 재수 없다고 침을 뱉었지만, 일본인에게 원숭이는 오히려 친근한 존재다. 일본의 건국신화에서 원숭이 이름을 가진 사루타히코(猿田彦)는 건국자 진무천황(神武天皇)의 길안내를 담당하던 신적인 존재였고, 조선침략의 장본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지혜, 순발력, 적응력이 높이 평가되어 사루(猿), 곧 원숭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일은 유명하다. 결국 골 세리머니를 통해 모욕 주려 했지만, 치수에 맞지 않은 앙갚음과 일본문화를 몰라 제대로 꼬집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억울하고, 그래서 국사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사와 일본문화에 대한 교육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지일을 통한 극일의 길도 넓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