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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오래된 눈물 /이상섭

진저리 쳐지는 소·돼지 생매장… 생명 가진 동물아닌 고깃덩어리로 보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2-25 20:56:4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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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나 정관은 어때, 아빠? 딸내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부부는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아무리 고생해서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도 '눈치코치'도 없이 그 비싼 쇠고기라니. 그것도 호주나 LA갈비도 아닌 한우를 말이다. 앞으로 제 밑으로 들어갈 등록금이며 책이며 옷값은 생각도 않는단 말인가. 안 그래도 대학생이 둘이 되는 처지이니 융자 외에는 방법도 없잖은가. 달뜬 감정을 드러내던 아내 또한 한순간의 결정이 몰고 올 후폭풍이 무서운지 갑자기 말문을 닫아걸고 말았다. 한데 아들까지 엉뚱하게 동생 편을 들고 나서는 게 아닌가.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도 소와 한번 친해보죠?

그래서 결정했다. 평생 먹기 힘든 한우를 우리 축하연의 자리에 기꺼이 모시기로 말이다. 한우 가격이 떨어졌다니 이번 기회에 배에 기름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문제는 이동거리였다. 봉계나 정관까지 가려면 소요시간도 그랬지만 기름값도 만만찮았다. 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근처의 한우식당을 찾기로 했다.

한우전문점임을 과시하고 싶어서일까. 식당 입구에는 소가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대형 사진까지 붙여놓았다. 옛날 생각이 났다. 비록 보잘것없는 사이즈지만 그래도 추억은 추억이니까. 어릴 적, 나는 소와 함께 살았다. 소가 여물을 먹으면 나도 밥을 먹었고, 소가 일을 하면 나도 함께 밭으로 나갔다. 그렇게 한 식구로 자란 소. 그래서 일찍부터 소를 '생구'라 불렀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아버지 또한 외출을 했다가 먼저 들렀던 곳도 외양간이 아니던가. 시골뜨기인 내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소 덕분이었다. 뿐인가. 소는 살아서는 노동력을, 죽어서는 자신의 몸을 인간에게 제공한다. 내장이든 꼬리이든 버릴 부위가 없다. 심지어 똥마저 요긴한 퇴비가 된다. 그러니 소야말로 귀한 대접을 받은 영물이 아닐 수 없다. 한데 세상이 달라져서 그런가. 아니, 살 만해져서 그런가. 그 비싼 쇠고기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넘쳐나다니!

대기실에 앉아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대기실에는 무료함을 달래라는 뜻인지 벽걸이 TV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TV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화열풍이 중동 전체로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단다. 음식 맛의 절반은 기다림이라고 했지만 자리는 좀체 나지 않았다. 뉴스는 구제역으로 넘어가 있었다. 이제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은 곳은 전라도밖에 없단다. 소나 돼지에겐 지금이 비상시국인 셈이라고나 할까. 전국의 소와 주인들이 다 울기를 정부는 바라는 것일까.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죽어가는 걸 죽이는' 저 무식한 꼴을 끝도 없이 지켜봐야 하다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순장의 폐습을 역사책에서 배운 우리가 동물이라고 저렇게 생매장이라니. 가까운 일본이 부러웠다. 시간이 걸려도 생명을 가진 동물이기에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락사를 시킨다고 하잖은가. 졸지에 식당이 아닌 영안실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젊은 내외가 꼬마를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아빠, 저게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꼬마는 벽에 걸린 대형 사진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빠가 대견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응, 저게 바로 우리가 먹을 소고기란다. 우와, 오늘 우리 저거 먹는 거야? 그래, 우린 오늘 저놈을 먹을 거란다, 그것도 생고기로 말이야, 하하하. 순간 갑자기 입맛이 실종되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고 밖으로 나서고야 말았다. 세상에, 아이에게 소를 저런 식으로 가르치다니! 나중에 커서 저 아이는 소를 생명이 아닌 고깃덩어리로 볼 것이 아닌가. 세상을 요모조모 뜯어볼 수 있는 바른 눈을 키워줘야 할 아이에게 저딴 말을 하다니. 한 세대만 건너면 다 논둑이 아닌 굴뚝에서 일하려고 농촌을 떠나온 족보들 아닌가. 게다가 아닌 말로 소한테 신세지지 않은 놈 어디 있는가. 하다못해 우유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크지 않았는가. 그런 내 마음을 모르고 아내가 달려와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래?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치고 말았다. 건드리지 마, 지금 내 몸은 울음으로 '만땅'이라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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