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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조선시대 입학식 /신명호

봄에 씨 뿌리는 마음으로 시작…성균관에선 공자에 절 올리는 의식 거행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02 20:54:2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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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경추수(春耕秋收)라는 옛말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봄은 준비의 계절이자 파종의 계절이었다. 봄날에 여무진 씨앗을 대지에 뿌리면 곧이어 싹이 터 무럭무럭 자란다. 여름 한철의 뜨거운 태양 속에서 제때에 김을 매주면 곡식들은 쑥쑥 자라난다. 그렇게 자란 곡식들을 가을에 거두어 겨울 양식으로 삼는다. 이렇게 철따라 씨 뿌리고 김매고 또 거두어들인 곡식을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던 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봄에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봄에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켰다.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약속하는 것이 봄의 파종인 것처럼, 원숙한 어른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봄의 입학식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남자 아이들은 여덟 살 전후 되는 봄날에 집을 떠나 스승을 찾아갔다. 아이들이 봄에 집을 떠나 스승에게 가는 이유는 봄이 준비의 계절이기 때문이었다. 사삿집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왕세자 역시 봄날에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렀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이름 자체도 '봄의 집'이라는 뜻의 춘궁(春宮)으로 불렸다. 왕세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조선시대에 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아이들은 대지에 뿌려지는 씨앗과 같았다.

조선시대에는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려면 먼저 허락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만약 선생님이 거절하면 사제 관계는 맺어지지 않는다.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허락받기 위해서는 정중한 예를 차려야 했다. 예물도 필요했다. 예물은 비단과 술 그리고 안주로 쓸 포였다.

학생이 준비한 예물을 드리고 정중하게 가르침을 요청할 때 선생님은 제자로 거둘 것을 허락한다. 그 순간부터 사제관계가 되어 학생은 선생님의 문하에 입학한다. 요컨대 조선시대의 입학식이란 선생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요청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때 예물을 드리면서 요청한다고 하여 속수의(束脩儀)라고도 했는데, 속(束)은 묶은 비단이란 뜻이고 수(脩)는 술안주로 쓰는 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봄에 입학식을 치렀다. 예컨대 생원이나 진사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할 때에도 봄에 입학식을 치렀던 것이다. 황윤석은 18세기를 대표하는 유교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1725년(영조 5년) 전라도 고창에서 태어난 황윤석은 31세 되던 해에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조선시대에는 진사 또는 생원 시험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다가 대과시험에 합격하면 양반관료가 됐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생원과 진사는 입학(入學)의 문이요, 대과는 입사(入仕)의 길이다'고 했다.

생원과 진사에 합격한 사람들은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든 말든 관계 없이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치러야 했다. 진사에 합격한 황윤석 역시 그랬는데, 그의 일기에 의하면 입학식은 다음과 같았다.

1759년(영조 35년) 3월 11일, 황윤석은 궁궐에서 진사시험 합격증인 백패(白牌)를 받았다. 이틀 후에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에서 입학식이 거행됐다. 진사는 왼쪽에, 생원은 오른쪽에 정렬했다. 입학식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대성전을 향해 네 번의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대성전은 유교의 교주이자 만세의 스승인 공자의 위패를 모신 건물이었다. 따라서 생원과 진사의 입학식이란 신입생들이 공자에게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생원과 진사들은 성균관에서는 입학식만 치를 뿐 정작 공부는 서원에서 했다. 서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또 입학식을 치러야 했다. 황윤석 역시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석실서원(石室書院)으로 갔다. 당시 석실서원의 원장은 안동 김씨 출신의 김원행이었다. 황윤석은 김원행에게 "엎드려 바라건대 납지(納贄)를 허락해 주소서"라고 요청했다. 몇 번의 사양과 요청 끝에 허락이 떨어졌고, 속수를 올림으로써 입학식이 끝났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학식은 봄철에 치른다. 봄철 대지에 뿌려진 여무진 씨앗들처럼 신입생 한 명 한 명이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기원해본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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