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열도가 일순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참혹한 현장으로 변했다. 일본의 참변을 보면서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지진현장에서 응급구호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그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생각나 일본현장과 오버랩 되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시 쓰촨성 지진피해 현장은 희생자 수조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무너진 건물잔해에 깔려 척추나 사지가 손상된 많은 환자를 방송으로 보니 정형외과나 외과의 손길이 절실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긴급 의료팀을 구성했다. 의료봉사단 17명이 김해공항에서 20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과 수술기구, 70여t의 구호물자 등을 싣고 출발했다. 상해, 청두, 호시, 베이징 등에서 온 그린닥터스 의료진과 지원인력 26명이 합류했다.
청두에 내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진의 공포로 청두시내를 빠져나가는 엄청난 차량행렬, 여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 위험 때문에 집과 건물 내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로변 천막과 광장, 임시대피소로 피난 온 이재민들,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버린 건물들…. 우리 역시 호텔에 들어갈 수조차 없어 공원에서 노숙하고 식사도 라면으로 겨우 때워야 했다. 많은 인원을 책임진 단장으로서 귀국해야 할지 계획대로 응급구호를 해야할지 정말 막막한 상황이었다. 수차례의 회의 끝에 계속 진행하기로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고로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마지막 기념촬영이라니 기분이 착잡하고 인솔자로서 심한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해외의료봉사단체로서는 유일하게 지진현장에 들어간다는 두려움을 안고 청두에서 2시간30분을 달려 최대 피해지역인 베이촨현에 인접한 멘주의 샤오바전에 있는 5000여 명이 몰려있는 이재민촌으로 갔다. 가는 길은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모습들로 가득했다. 특히 가난한 농부들의 토담집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고, 그나마 신흥도시의 탄탄하게 지어진 건물들만 남아 있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어 이토록 피해가 큰 것일까? 정말 안타까웠다.
이재민촌 바로 옆 논바닥에 텐트 야영을 하며, 곧바로 800여 명의 부상자와 일반환자를 진료하고 간단한 처치와 수술 등을 시행하였다. 이재민촌의 아이를 찾는 부모, 아내를 잃은 남편 등 수많은 사연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원 요청이 들어와 수술팀을 이끌고 급히 인근 광한지역의 광한의원으로 향했다. 부상자들이 여진위험 때문에 야외천막 가입원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척추손상, 골절, 감염, 신경마비환자 등을 우선 응급처치하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3명을 직접 집도하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술기구나 장비는 한국에서 가져가지 않았으면 수술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하였다. 수술 후 양호한 경과를 보인 환자 보호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숙여 고마워했다. 돌아오기 전, 수천만 원 상당의 의약품, 치료재료 및 수술장비 등은 구호활동에 쓰라며 병원에 기증하였다.
2년 뒤 현장을 재방문했을 때 엄청나게 큰 대규모의 이재민 아파트 단지, 새로 지은 학교, 병원 등이 들어선 신도시를 만들어 지진 재난 이재민들이 거주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중국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난민촌에 새로 지어진 학교에 한국에서 가져간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계속된 전 세계의 대형지진과 이웃 일본의 참상을 보면서 재앙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재난은 한국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1978년 이후 네 차례나 규모 5.0 이상 지진이 발생해 인명 피해와 건물 파손이 있었으며,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진 41건이 발생했고 그 빈도 또한 높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매년 태풍과 홍수로 인한 인명과 재산피해도 반복되고 있다. 결국 재난을 방지하고 최소화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했을 때 응급구호 등을 통해 피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조 및 매뉴얼 작성과 함께 시민들의 안전의식 함양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부산센텀병원장·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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