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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다문화 정책은 정말 실패했는가 /이한숙

억압적인 동화정책, 실패 선언 봇물처럼 그래도 같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23 20:30:2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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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진 소식을 접하고 지인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전기가 문제지만 괜찮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그 분이 남긴 말이 마음에 남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재난 이후 평범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함, 인내심,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방사능 피폭의 위험이 가득한 현장으로 자원해 달려간 이들, 피해가 더 심한 지역과 기꺼이 모든 것을 나누는 이들의 소식은 피해가 아무리 크더라도 일본사회가 곧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다. 그런 신뢰와 감동이 국제적인 지원과 온정의 손길을 더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비슷한 재난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대처했던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국가는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는 루머를 퍼뜨렸고, 군대 경찰 각지에 조직된 자경단을 통해 최소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을 학살했다.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이들을 한 번에 잃어버리는,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재난 앞에 개인의 성품은 물론이고, 한 사회의 주된 가치관과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고는 한다. 겉으로는 민주적이고 세련된 시스템을 갖춘 국가인데, 재난 후면 어김없이 무법천지의 약탈과 혼란이 따르는 곳도 있다. 그 혼란에 민족적·인종적 소수자와의 갈등이 관련된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갈등은 사회응집력을 떨어뜨리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그들'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거나, '그들'이 '우리'처럼 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정치 지도자들의 '다문화정책 실패 선언'이 그 예이다. 유럽 정치인들의 선언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우리가 그 문제 많은 다문화 사회로 가야 할 이유가 뭐냐는 의견도 들린다. 이 때 다문화 사회란 아마도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서구유럽 국가들은 급격한 경제성장기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주노동력을 적극 도입했다. 일본의 식민지 조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 노동력이 우선 활용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북아프리카 출신, 영국에는 인도 출신 이주민이 많다. 독일에는 터키 등 무슬림 국가출신 이주민이 많다. 냉전시대 지정학적, 군사적 요충지에 서독이 노동력 송출협약을 선물로 준 결과이다. 한국의 이주민 중 중국인, 그 중에서도 동포가 많은 것은 뼈아픈 식민지 역사의 결과이고, 한국의 기업과 자본이 진출하는 경로를 따라 역으로 인접 아시아 지역 이주민들이 들어온다.

즉 서구유럽은 '이민 사회'가 더 좋아서 이주민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사회경제적 구조 때문에 어떤 사회든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다문화 정책은 이런 현실 인식에 더해 억압적인 동화정책이 오히려 사회응집력을 떨어뜨릴 뿐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의 다문화 정책은 정말 실패한 것일까. 어떤 점에서는 그렇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문화적' 갈등으로 환원시켜, 경제적 부와 정치적 참여에서 배제되어 기댈 곳이라고는 민족적·인종적·문화적 정체성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불평등에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데 이용되어 온 한에 있어서는.

그러나 다문화 정책은 소수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주류사회의 노력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 노력에 붙이는 이름이 달라져도, 그 내용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해도, 계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력이다. 사회적 갈등으로 이익을 보는 건 반이민 정서로 표심을 잡는 일부 정치인이지만 그 부담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져야 하기 때문에.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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