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 최대 화두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대통령이 그린 공정사회의 밑그림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하고,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며,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으며,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며, 노사가 협력하며 발전하고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상생하고,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대통령이 밝힌 '공정사회'의 담론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돌이켜보면 그저 쓴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물론 우리 사회 일각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공정사회의 화두가 지닌 내용상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없었던 바는 아니다.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평가할 때 '공평성'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그 보다 상위 개념인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날선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사회'라는 화두에 담긴 논리적 내용보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그 실천의 결과에 있다. 우리 사회 어디를 돌아봐도 대통령이 내놓았던 '공정한 사회'의 밑그림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합당한 차이로 나타나는 '공평한 사회'의 밑그림은 무상급식 및 무상복지에 관한 진보와 보수 간 일대 논쟁으로 형해화한 지 오래다. 물론 사회적 약자나 패자, 소수자에 대한 배려까지 아우르는 '공정한 사회'를 향한 성숙한 모습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년간 우리가 목도해 온 것은 오히려 불공평하면서도 불공정하기 그지없는 사회의 단면들이었다.
맷값 폭행 사건의 가해자였던 재벌가의 친인척은 집행유예로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반면, 피해자였던 한 운수노동자는 검찰에 기소되어 곤욕을 치르는 역전 드라마가 연출된 것이 그 한 예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는 주어졌으며,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패자는 정작 하루 저녁 맷값으로 수천만 원을 흔쾌히 탕진할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강자였다.
최근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저축은행 부실사태 또한 '공정사회'의 실종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몰염치함은 '덜 가지거나 못 가진 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경쟁의 승자로 부를 축적한 이른바 VIP 고객들은 뒷배를 봐주는 저축은행 임직원과 권력자의 비호 아래 예금인출 경쟁에서마저 승리함으로써 영원한 승자가 되었다. 반면 평생 노동의 대가를 고율의 이자에 저당 잡혔던 서민예금주들은 그 모든 경쟁에서 영원한 패자일 수밖에 없었다. 묻건대 승자독식의 '불공정' 논리가 이와 어찌 다르며, 대통령이 말한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공정사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통령 공약으로 대접받아 오다가 아예 백지화되어 버린 '동남권 신공항'이나 새로운 논란에 휩싸인 '충청권 과학벨트'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에서도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한 "지역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지역균형발전의 대의라곤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정의는 차별대우와 부당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묻혀 잊혀진 지 오래다. 큰 기업에 상생의 가르침을 일깨우려 했던 정치권력의 소박한 바람은 무소불위의 경제권력 앞에 체면을 구긴 지 오래다. 대통령이 8·15경축사를 통해 수없이 열거했던 그 많던 정의는 지금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쉽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왜 그러하며 그 처방은 무엇인가? 집권 후반기 찾아올 레임덕을 걱정해야할 대통령과 새 내각,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4·27 재보선 이후 민심에 떠밀려 개혁의 내홍을 앓고 있는 여당이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의대 정치외교학과교수